'사무치는 그리움'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의 이야기

기사등록 2017/11/16 15:51:04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1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만 북문에서 한 추모객이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이 걸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7.11.16.  sdhdream@newsis.com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1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만 북문에서 한 추모객이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이 걸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7.11.16.  [email protected]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사무치는 그리움과 한 맺힌 고통의 시간,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4월11일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올라와 목포신항만에 거치된 뒤에도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옥 같은 기다림의 시간을 버텨왔다.

 미수습자 가족들에는 매 순간이 고비였고 사투(死鬪)였다. 9명의 가족들이 머무는 신항만 앞 컨테이너 숙소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유가족이 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목놓아 외쳤다.

 하지만 미수습자 9명 중 4명만 '꽃처럼, 별처럼' 돌아왔다.

 나머지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은 참사 발생 3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수습자 5명의 가족들은 16일 "국민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목포신항만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오는 18일 합동 추모식을 한 뒤 세월호를 남겨두고 목포를 떠난다. 20일까지 서울·안산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영원한 그리움을 시작하는 5명의 가족들에게 국민은 말한다. "우리가 더 고맙고,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월호 곁을 떠나야만 하는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풀어본다.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1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한 추모객이 세월호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을 바라보고 있다. 2017.11.16.  sdhdream@newsis.com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1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한 추모객이 세월호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을 바라보고 있다. 2017.11.16.  [email protected]

 ◇만능 스포츠맨 박영인군 

 2남 중 막내인 박영인군은 성격이 무척 활발했다. 집안일도 척척 해냈고, 아버지를 잘 따랐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야구 등 모든 구기 운동을 즐겼다. 이른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고교 볼링부에서 활동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해 체육대 진학을 꿈꿨다.

 영인군의 어머니는 세월호 참사 전 '축구화를 사달라'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 게 마음에 남아 있다.

 영인군의 부모가 사놓은 축구화는 3년 7개월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던 영인군 덕분에 어머니의 휴대전화에는 가족 사진도 가득하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남현철군

 '사랑하는 그대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많이 힘든 그대, 힘이 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지금쯤 그대는 좋은 꿈 꾸고 있겠죠. 나는 잠도 없이 그대 생각만 하죠. 그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지만 항상 마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중)
 
 남현철군이 작사한 노래다. 곡은 세월호 희생자 이다운군이 썼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현철군은 기타와 작사 실력이 상당했다. 글도 잘썼고, 부모에게 살갑게 굴던 착한 아들이었다.

 4대 독자였던 현철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던 기타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단원고 지킴이' 양승진 교사

 30년간 사회 과목을 가르치던 단원고 인성생활부장 양승진(사고 당시 59세) 교사는 '단원고 지킴이'였다.

 그는 오전 6시40분이면 출근해 하얀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학생들의 등굣길을 지켰다.

 학교 뒷산 주말농장에 사과나무를 심고 천년초를 키웠고 이를 팔아 '천년초 장학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도왔다.

 참사 당일에도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던 배 안으로 뛰어들어간 뒤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학생들에게 "과자를 사먹으라"며 용돈을 쥐어주기도 했다.

 3년여만에 세월호가 물 위로 떠오른 지난 3월23일은 부부의 33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양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는 "정 많고 자상한 남편이었다"며 또 한 번 마르지 않을 눈물을 흘렸다.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1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만 세월호 선체 앞에서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신항만을 떠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7.11.16.  sdhdream@newsis.com
【목포=뉴시스】신대희 기자 = 1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만 세월호 선체 앞에서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신항만을 떠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7.11.16.  [email protected]

 ◇새 삶 그렸던 권재근·혁규 부자

 권재근(사고 당시 51세)씨는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당시 29세)씨, 아들 혁규(당시 6세)군, 딸 지연(당시 5세)양과 함께 감귤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제주로 귀농하던 길이었다.

 아내 한씨는 참사 일주일 만인 2014년 4월23일 시신이 발견됐지만, 권씨와 혁규군은 여전히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혁규군은 사고 당시 어머니를 도와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며 탈출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생존한 지연양은 친가에서 돌보고 있다.

 재근씨의 친형 권오복씨는 생업을 접고 동생과 조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팽목항과 목포신항을 지켜왔다.

 새 삶을 그렸던 가족들의 꿈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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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는 그리움'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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