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대로 한지일은 10년 전 빈털터리로 미국에 갔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탓에 100억원대 재산을 날리고 가정도 잃은 뒤였다.
현지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노인, 탈북자, 청소년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국내에서도 한지일은 1971년 말부터 매해 5~6차례씩 수십년 간 양로원을 찾아다닌 봉사의 아이콘이었다. 이번 귀국 전에도 로스앤젤레스 윌셔 양로보건센터, 부에나파크 행복양로보건센타를 찾아가 노인 450명을 위로했다.
“시카고에서 차를 몰고 7~8번 주유를 해가며 사흘 걸려 로스앤젤레스로 가면서 평창올림픽을 광고했다. 차 뒤에 단 트레일러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코리아의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고 소개했다. 사우나나 모텔에서 자면서 그렇게 뉴욕, 필라델피아, 댈러스, 애틀랜타, 텍사스, 워싱턴, 버지니아, 메릴랜드, 오하이오 등지를 누볐다. 아마 지구 세 바퀴 반은 돈 거리일 것이다.”
한지일은 “미국에서 막일 27가지를 하면서 버텨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이 무섭다. 떠돌며 살아가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아주 들어온 것인지, 다시 시카고로 가야할는지는 국내 팬들과 연예계의 관심도에 달린 듯하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