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국가대표 해운사 40년 역사 뒤안길

기사등록 2017/02/17 09:00:44

【서울=뉴시스】한진해운, 설립부터 파산선고 까지.
【서울=뉴시스】한진해운, 설립부터 파산선고 까지.
고 조중훈 창업주 '수송보국' 꿈안고 1977년 설립
국내 1위·세계 7위 선사에서 한순간에 몰락
글로벌 해운 불황에 '한진그룹-채권단' 힘겨루기에 좌초 

【서울=뉴시스】황의준 기자 = '국가대표 해운사' 한진해운이 글로벌 해운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4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17일 오전 한진해운에 대한 파산선고를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린 지 약 2주 만의 일이다.

 한진해운은 지난 1977년 5월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꿈을 안고 설립한 회사로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선사다.

 이 회사는 출범 이듬해인 1978년 중동항로를 시작으로 1979년 북미서안 항로, 1983년 북미동안 항로 등을 연이어 개척하며 한국 해운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1988년에는 대한상선(대한선주)과 합병하며 '국내 1호 선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1992년에는 국내 최초로 40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선을 띄우는 동시 국적 선사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2년 11월 조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에는 셋째 아들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방향타를 잡았다. 마침 해운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회사가 순항하는듯했지만 조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섰지만 글로벌 해운 장기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회사는 수천억원대 적자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결국 한진해운 경영권은 지난 2013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해운업에 큰 애착을 가졌던 조 회장은 한진해운 회생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상황을 되돌리지 못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4월 한진그룹이 더는 한진해운을 떠받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지난해 5월부터 용선료 조정·사채권 만기연장 등의 조건부 자율협약이 시작되며 회생에 불이 붙는듯했지만 회사는 약 4개월 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 문제를 놓고 한진그룹과 채권단이 힘겨루기를 펼쳤고 '청산하는 편이 더 낫다'는 금융논리가 더해지면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다.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벌크선, LNG선 등 총 200여척의 선박으로 전세계 60여개의 항로를 운영하며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던 국내 1위·세계 7위 해운사였다.

 정부가 한진 사태 이후로 현대상선을 앞세워 국내 해운업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한진해운과 같은 선사가 국내에서 다시 나오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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