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 떠난 서예 신동의 '차이나 드림'

기사등록 2015/12/22 10:44:26

최종수정 2016/12/28 16:06:14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지난 주말 중국 랴오닝성 판진(盤錦)시에서 서예가 손동준을 만났다. 현재 판진시의 광샤 예술거리 예술촌에 입주한 유일한 외국인 작가로 그는 또 '1호' 기록을 쓰고 있는 중이다. 4만여평에 조성된 광샤 예술거리는 판진 부동산재벌인 양신그룹이 1800억원을 투입해 세운 문화예술특구다. 2016년 1월1일 개관을 앞둔 이곳엔 손 작가를 포함해 중국 전역에서 선발 초대된 100인의 화가들에게 개인 작업실과 아파트를 지원했다.

 손동준씨는 중국에  5년 전 유학왔다. 지난해 중국 수도사범대학에서 '추사 김정희의 중국 활약상'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사범대학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예과를 개설한 대학으로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쥐양중셔(歐陽中石) 원로 교수가 은사였다. 동기들은 박사를 따자 대학의 교수가 됐거나, 유명한 서예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반면 외국인인 그는 중국에서 교수 자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대학의 서예과는 없어지는 판이었다. 또 팔리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전통 서단은 여전히 암울했다. 중국에선 달랐다. 서화가들은 가방에 화선지를 꾹꾹 눌러 넣고 가 글씨를 써주고 그림을 그리면 꾹꾹 눌러간 화선지만큼의 돈을 벌었다.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중소 도시 판진시로 오게된 건 희망때문이다.

 손동준은 이미 국내 서단에서 차세대 서예가로 손꼽혔다. 서예학원을 운영한 할아버지의 권유로 5세부터 붓을 잡은 그는 '서예 신동'으로 통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국내 학생서예대전에서 대상만 무려 15회를 받았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서예학과가 개설된 원광대에 만점으로 1990년 입학했다. 이미 1학년부터 별명이 '걸어 다니는 서예자전'이었을 정도였다. 국내 최고 권위의 서예대회인 전국휘호대회 상을 휩쓴 스타 서예작가다.

 대학졸업 후에는 '돌 틈에 부는 바람'이라는 타이틀로 국내 최초의 전각개인전을 열고 2007년 들어서는 '한중일 대표 서예가 3인전'까지 가졌다. 한창 전성기였던 40세에 갑자기 중국 유학길에 나선 이유는 '한국이 좁아서'였다. 결정적 계기는 '전통을 홀대하는 국내 문화계 현실' 때문이었다. 전통을 좇는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더 이상 없다는 참담한 현실은 작가로서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였다. 

 중국은 서예가인 그를 환영했다. 중국정부 서법장학생 박사 1호로 졸업까지 4년간 학비전액 면제, 기숙사비 전액 면제와 매달 기본생활비까지 지급했다. 달랑 50만원만 들고 왔지만 기죽지 않았다. 글씨만큼은 중국인 누구에게도 지지않는다는 자신감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판진 광샤예술촌에 입주해 작업실 앞에 '서울화랑'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베이징에서는 작업실과 재료비 때문에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이대로 한국으로 가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최고의 서예가'가 되겠다는 꿈은 '외국인은 안 된다'는 예술촌의 원칙과 계약사항도 눌렀다.

 중국에서 5년만에 자신이 직접 판 글씨로 현판을 걸면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이곳에 온 지 석달째, 그는 광샤예술촌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외국인 1호 작가이기도하지만 그의 스승이 유명 서예가라는 덕도 있다. 예술촌을 세운 양신그룹 츄이즈량 회장은 랴오닝성을 대표하는 수많은 주요 인사들을 소개하며 그를 챙기고 있다.

 광샤예술촌에서도 벌써 명소가 된 그의 작업실은 50여평 규모로 2층 구조다. 1층은 차를 마시며 작품을 볼수 있게 전시장처럼 꾸몄고, 2층은 작업실이다. 2층은 넓은 옥상까지 이어졌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작업하며 그림을 저장하고 있는 손동준 작가는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다"며 울먹였다. 가족 얘기만 나오면 묵울대가 꿀럭였다. 중국에서 이런 작업실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아버지 모습을 보이고 싶고, 자신을 뒷바라지 해온 '직장맘'인 부인을 쉬게 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는 그림이 팔린다고 했다. 벌써 30점을 표구사에 맡겼다며 싱글벙글이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형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전통서예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한 한국의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서예와 추상을 결합해 '현대서화'를 작업하고 있는 그는 중국에서 '10억대, 100억원대 서예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다.

 전통에 대한 인식은 국가의 경쟁력을 발휘하는 큰 힘이다. 그 선두의 중심으로 이웃국가 중국이 꼽힌다. 중국은 이미 다방면에서 전통문화의 저력을 기반으로 큰 성공사례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장르가 서화(書畫)다. 중국 미술시장에서 최고가는 서화나 전통공예 작품이 차지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미술품은 찬밥 신세다.

 전통문화의 '차이나 드림'을 이뤄가고 있는 서예신동의 뼈아픈 행보를 개인의 단편적인 경험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제 2, 3의 손동준은 우리나라에선 성공할 수 없는가 하는 점이 과제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자신의 몸부터 제대로 수양해야 국가도 잘 다스릴 수 있다. 한 민족이나 나라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통이다. 지금 한국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부평초 신세와 같다.

 문화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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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 떠난 서예 신동의 '차이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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