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관리 전문업체, 수리비 임차인에 떠넘겨
【서울=뉴시스】이승주 기자 = 신촌 먹자골목의 음악살롱 '리버피닉스'가 17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이곳의 주인 강연자(67·여)씨는 지난 17년간 희귀 음반과 뮤직비디오로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했다. 리버피닉스에서는 한정판 음반 2000여장과 뮤직비디오를 안주 삼아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리버피닉스를 찾았다.
리버피닉스는 원래 지금의 옆 골목에 있다가 2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임대 재계약에 실패해 쫓기듯 나왔지만, 굳이 바로 옆 골목을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단골손님들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리버피닉스가 두 달 전 문을 닫았다. 천장에서 물이 흘러나와 가게가 온통 물에 잠겼다. 전기도 끊겼다.
손전등을 들고 물 위에 올려놓은 나무판자를 밟으며 조심스럽게 들어가 봤다. 위층에 있는 십여 개 하숙집의 배수관이 터져 흘러나온 구정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구석 한편에는 수천여장의 음반과 스피커, 빔프로젝터 등의 장비들이 구정물을 피해 쌓여있었다.
강씨는 "몇 달 동안 물을 밖으로 퍼 나르고 에어콘을 돌리며 버텨왔다.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떨어지는 물벼락과 냄새를 못 참고 나가더라. 올 초부터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엠사 관계자는 그동안 수리는 불가능하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오히려 장사가 되지 않자 임대료 일부를 체납한 것을 핑계로 명도소송을 걸었다.
임대료 체납으로 가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단골들이 뭉쳤다. 수십여명의 단골이 돈을 모아 수백만원의 빚을 갚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재계약은 오히려 '부메랑'이 됐다. 강씨가 계약서 뒤편에 작은 글씨로 쓰인 독소조항을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탓이었다. 자산관리회사에서 계약서 뒷장에 누수에 대한 책임은 임차인 본인에게 있다'고 적어놓은 것이다.
한 자산관리업계 관계자는 "가게가 낡아 일어난 누수와 같은 문제는 건물주가 수리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계약서에 임차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조항을 넣은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내가 나이가 많아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불찰도 있지만, 누가 이런 황당한 조항을 계약서 뒷장에 적어놨으리라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연체 임대료도 갚고, 재계약도 한데다 명도소송도 취하했다고 하길래 문제가 없을 줄만 알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리를 해달라고 그렇게 애원할 때는 건물주 한번 못 만나게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더니, 거짓말을 섞어가며 명도소송을 걸어 내쫓는 것은 순식간"이라며 가슴을 쳤다.
신촌에서 10년째 파전 가게를 운영하는 김씨는 "임대관리업체와 붙으면 무조건 임차인이 진다는 말이 상인들 이에서 돌고 있다"며 "재계약의 과정에서 초기 시설비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 이들이 신촌에 한둘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업계 전문가는 "임대관리업체에서 법망을 피해 수리의 책임을 임차인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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