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애국가 작사자 안창호 주장, 대국민사기극"

기사등록 2012/09/03 06:41:00

최종수정 2016/12/28 01:11:33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애국가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라고 주장하는 흥사단 측이 사료를 조작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연갑 상임이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3일 “흥사단은 나의 애국가 연구를 놓고 ‘위증을 했다’ ‘윤(치호)씨 집안의 앞잡이다’라고 발언해 명예를 훼손한 것은 물론, 내 저서를 표절했으며, 1907년 보도기사를 조작해 8차례나 인용하는 등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 이사는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 서지학자다.

 지난달 22일 ‘애국가 작사자 규명 발표회’를 열고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라고 주장한 흥사단이 도산과 애국가가 명시적으로 언급된 거의 유일한 자료인 1907년 3월20일자 대한매일신보 ‘국기배례(國旗拜禮)’ 기사 자체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그날 흥사단이 발표한 논문 2편은 조작된 기사를 2, 6차례씩 인용했다. 연구자 2인의 개별 연구가 아닌 동일한 텍스트에 의한 짜맞추기”라고 짚었다.

 “한자·국어 혼용과 이두식 표기, 조사의 무원칙한 사용 등이 특징인 1900년대 신문기사는 독해에 주의해야 한다. 조사 하나를 잘못 처리하면 뉘앙스 차이 정도가 아니라 탈맥락적 해석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전제하며 “그런데 안용환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와 오동춘 흥사단애국가작사자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운운(云云)’으로 기사를 흐리고 의도적으로 축소, 편집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가 지목한 인용기사는 ‘미국서 돌아온 안창호씨가 서서만리현 의무균명학교에서 선진국의 본을 받어 매일상학 전에 국기예배와 애국가화창을 하기로 되어 거월요일부터 배기창가례를 거행한다더라 운운’이라는 부분이다.

 이 기사의 팩트는 ‘안창호가 미국에서 국기배례하며 애국가를 부르는 개명 미국의 모범을 보고와 이렇게 하자고 역설, 이를 (서울역 뒤) 의무균명학교에서 받아들여 시행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기사 속의 국기배례는 태극기와 대한제국애국가다. 이 애국가는 1903년부터 1909년까지 공립학교와 공공행사에서 불려졌다”고 설명했다. 1907년 순종 즉위식 팸플릿의 애국가, 신나라레코드(회장 김기순)가 소장한 1909년 YMCA 상량식 식순의 애국가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흥사단은 도산이 자신이 작사한 애국가를 의무균명학교 학생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이는 기사 속의 국기(태극기)도 안창호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이런 해석이 가능토록 기사를 삭제, 축소 조작했다”고 못박았다.

 기사의 원문은 ‘국기배례① 서서만리현 의무균명학교에 거번귀국하였든 미국유학생 안창호씨가 생도에게 대하야 근면한 내개(內開)에 미국각종 학교에서는 애국사상으로 매일 상학전에 국기에 배례하고 애국가를 창함을 견한즉② 영인감앙(令人感昻)이라 연즉 범오 학교도③ 종금 시행하자함으로 해교(該校)에서④ 거(去) 월요일로 위시하여 배기창가례(拜旗唱歌例)를 거행한다더라’다.

 김 이사는 “흥사단은 원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네 곳을 삭제했다. 키워드를 안창호와 애국가로 하고 주어와 목적어로 처리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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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①기사 제목 ‘국기배례’를 삭제했다. 이는 애국가 뿐 아니라 국기 게양도 함께한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인데, 이를 그대로 두면 태극기도 도산 안이냐는 주장을 부담스러워 한 결과다.  

 ②도산이 ‘미국에서 국기에 배례하며 애국가를 화창하는 것을 본 즉’은 미국 국기와 국가를 칭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불린 어떤 애국가도, 안창호 자신이 지은 애국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를 ‘안창호 작사 애국가’라고 강변했다.  

 ③은 ‘여러 학교 중 우리학교도’라는 뜻이다. 안창호가 이미 와서 주장해 여러 학교가 이를 따른다는 의미다. 이 기사의 날짜는 보도일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자신들만 아는 ‘선천교회’ 운운해가며 날짜를 대입, 짜맞췄다.

 ④는 이를 의무균명학교에서 시행하려한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는 안창호가 미국에서 보고와 역설한 국기배례의 필요성을 받아들여 의무균명학교가 시행할 예정이라는 보도기사이지 ‘도산과 애국가’ 또는 ‘도산의 애국가’를 다룬 기사가 아니다.  

 김 이사는 “흥사단은 삭제와 축소로 조작한 기사를 인용, 의미를 부여해 문장을 처리했다. 사실(기사)을 조작한 결론을 여섯 곳에나 갖다 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1. ‘안창호선생님이 선천예배당에 작사해주고 1907년 3월18일(월요일)부터 서울 만리현의 의무균명학교에서 화창운동을 벌이게 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으로 시작하는 애국찬미가가 있다.’ (조작 기사 인용)

 2. ‘···애국가 가사는 애국찬미가로 평북 선천예배당에 도산 안창호가 지어준 것으로 도산 생존시 만났던 윤형갑, 기명수 등의 증언으로 증명되고 있다. 문헌적 근거로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조작 기사 인용)

 3. ‘위의 대한매일신보 기사에서 보듯이 도산은 1907년 3월에 이미 오늘의 애국가 가사를 작사했던 것이다.’

 4. ‘도산이 지은 애국찬미가는 대한매일신보 다음 기사에서 애국가는 도산 안창호 작사임이 확실히 증명된다.’

 5. ‘1907년 3월 경칩(3월7일) 무렵 선천예배당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찬미가 영감을 얻어 찬미가를 지어 주었고 이 애국찬미가는 1907년 3월20일 대한매일신보 보도대로 미국에서 돌아온 안창호씨가 의무균명학교 학생들에게 월요일(3월18일)부터 국기배례를 하고 애국가를 화창케 했다고 신문기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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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기사 인용 후) ‘이 기사가 도산이 지은 애국가를 처음 보급하는 활동으로 보인다.’

 김 이사는 “흥사단은 이렇게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며 “억측도 지나치다. 자기들만 알고 인용한 ‘기억의 기억으로 만든 선천교회 운운 CD’의 시기와 상황을 꿰맞추기 위해 기사를 조작했다. 그 애국가가 어떤 것인가도 판단하지 못한 채 사기를 친 것”이라고 비난했다. “임시정부 개원식에서부터 열렬하게 애국가 운동을 선도한 도산의 명예로운 활동상까지도 욕되게 하는 처사”라고 개탄했다.

 표절도 문제 삼았다.

 김 이사는 “안용환은 윤치호 역술 ‘찬미가’의 증거력을 자신이 부인해야 한다는 과욕에서 오독은 물론 표절까지 했다”고 밝혔다. 즉,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집술(輯述)’의 실례를 들어 ‘자료를 모아 풀고(輯) 지었다(述)’라는 의미인 것과 마찬가지로 번역한 것(譯)과 지은 것(述)이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길준이 모아서 번역만 하고 자기의 글로 기술한 것이 없다면 ‘번역’이라 했을 것이다. 윤치호도 12편의 서양 찬송가를 번역한 것 같이 3편도 자신이 작사한 것이 아니라면 ‘번역(飜譯)’이라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12편이 분명한 서양 찬송가와 같이 3편이 번역 작품이라면 그 저본인 한문이나 영어로 된 가사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있다면 이 책은 역술이 아니라 번역”이라고 단언했다.  

 김 이사는 “안용환이 역술과 집술을 대비한 논리도 맥락상 표절이지만, 이를 역이용하는 과정에서 내 글을 표절했다”며 “안용환의 다음 문장은 (나의 저작인) ‘애국가작사자연구’의 문장 그대로다. 인용 표시나 주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길준의 순수 저술인 ‘대한문전’과 ‘노동야학독본’에는 저작과 저술로 표기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 당시 출판인들은 ‘저작’과 ‘저술’의 의미와 ‘집술’의 의미를 분명하게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 이사는 “자료의 자의적 편집은 기본 양식의 문제다. ‘증언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증언’에서는 반드시 상호 교차 비교가 요구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주요한인데, 안용환은 ‘주요한씨의 안도산전서에는 분명 도산이 작사했다고 못박고···’라고 했지만, 1955년 4월19일자 ‘애국가작사자는 누구?’에서 주요한은 안창호가 작사자라는 것은 ‘일종의 신화’라면서 ‘도산이 애국가 작사자라는 직접적인 증명을 가진 사람을 필자는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또 도산 자신의 입으로 그러한 말을 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분명히 했다. 이는 이후에 쓰여진 관련 자료에 영향관계에 있다”고 공개했다.

 또 “이 부분은 안창호전기에서 언급된 것이 아니라 애국가 작사자 조사 기간 중에 신문에 쓴 글이어서 문제를 인식하고 쓴 글이라는 점에서 차별적인데도 이는 인용하지 않았다. 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고 왜 이런 부분은 인용하지 않았는가. 같은 논리로 윤치호설을 부인하는 방식에서 (애국가 작사자설의 또다른 주인공들인) 최병헌과 김인식 측의 반론을 마치 안창호 측을 지지하는양 이용하기도 했다. 최·김 측의 반론은 안창호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며 의아해했다.  

 김 이사는 “누가 애국가를 작사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역사성과 정통성을 민족정서 통합에 어떻게 생산적으로 현현시킬 것인지가 문제”라면서 “정부가 애국가 작사자를 확인하고 애국가를 국가로 규정하는데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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