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 만난 바그너…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객석에서]

기사등록 2026/10/30 13:47:40

'반지' 4부작 대장정…권력·탐욕 현대적 은유 돋보여

'알베리히' 사무엘 윤, 명불허전…韓 각색 일부 이질감도

[서울=뉴시스] 오페라 '라인의 황금'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은 어디까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국립오페라단의 '라인의 황금'은 이 질문을 남겼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반지) 4부작 국립오페라단의 제작 대장정이 시작했다.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오페라 '라인의 황금'은 대서사의 문을 열었다.

올해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 초연 된지 150주년을 맞았다. 국립오페라단은 뜻깊은 해를 맞아 4부작을 1년에 한 편씩 총 4년에 거쳐 전작(全作)을 선보인다.

반지 시리즈는 절대 권력의 반지를 중심으로 신들과 난쟁이족의 대립을 보여준다. 북유럽 신화를 차용해 욕망과 배신, 사랑과 파멸을 보여주며 권력의 비극을 보여준다.

'라인의 황금'은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전반을 아우르는 전야극. 니벨룽족의 '알베리히'는 라인강의 세 처녀에 대한 구애가 실패하자 황금을 훔쳐 반지를 만든다. 한편 신들의 왕 '보탄'은 거인족 형제 '파졸트'와 '파프너'에게 신들의 궁전 '발할라'를 짓게 하고, 대가로 젊음의 여신 '프라이아'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를 배반하고, 대신 저주가 담긴 반지를 형제에게 준다.

연출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이끌었던 스위스 출신 로렌조 피오르니가 맡았다. 그는 '라인의 황금'이란 고전을 재현하기 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빗대어 재해석했다. 현대사회로 옮겨온 무대는 극을 신선한 시선으로 접하는 동시대적 해석으로 보였지만, 신화적 서사와 현대적 배경이 맞물리고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아쉬움도 남겼다.
[서울=뉴시스] 오페라 '라인의 황금'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황금은 5만원 권 지폐로 표현되고, 무대 배경은 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해 타락한 도시를 보였다. 등장인물의 의상에서도 가난과 부가 간접적으로 비춰졌다. 신들의 궁전 발할라에 입성하는 장면은 상류층의 새집 입주를 연상시켰다. 이들은 손에 샴페인잔을 들며 파티를 하는 장면으로 재해석됐고, 비극을 피했다고 믿는 듯한 축제의 분위기는 곧 닥칠 위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권력과 탐욕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하다는 메시지, 고전을 박제된 과거로 남기지 않는 시도와 은유적인 장치는 좋은 시도였으나 작품 자체가 지닌 원작성과는 일부 괴리가 있었다. 고전 재해석과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을 설득시키는 점은 별개라고 느껴졌다.

또 지혜의 여신 '에르다'를 웅녀로, 촛불시위가 극 전개에 등장하는 장면 등 직접적으로 한국적 색채를 표현하는 지점은 다소 과해 작품 몰입도를 저하시켰다.

다만 이런 지점을 사무엘 윤의 연기가 상쇄했다. 세계 무대에서 바그너 가수로 활동하고,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주역으로 활동한 그는 명불허전한 모습을 보였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뚫고 나오는 가창은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았고, 황금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점차 타락해가는 인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서울=뉴시스] 오페라 '라인의 황금'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원작과 달리 알베리히를 서곡부터 등장시킨 해석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얻는다. 극의 갈등을 이끄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연출은 사무엘 윤의 존재감과 맞물리며 극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이번 공연은 무대 밖에도 극이 지속되는 장치가 숨겨져 있다. 라이브 카메라를 연출에 활용해 무대라는 공간을 제한하는 대신 확장했다.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없는 표정과 움직임을 드러냈고, 관객이 바라보는 시점과 극 속 인물의 시점을 교차시켰다.

약 2시간30분이라는 대장정은 인터미션(중간 휴식) 없이 이어갔다. 국내 단체 최초 반지 시리즈 시작은 새로운 이정표란 점, 고전을 오늘날의 이야기로 바꾸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원작과 거리가 먼 재해석은 다음 서사를 위해 고민할 지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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