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뜩이는 추리 대신 서민의 비애를 먼저 품었던 18년
차가운 법정 너머 '사람'을 먼저 응시한 한국적 리얼리즘의 초상
단벌 바바리에 스민 취조실 담배 연기와 연민의 시선
죄를 묻기 전 아픔을 먼저 보듬었던 우리 시대 '큰 어른' 품격
취조실서 삼킨 무력한 눈물…아이들 위한 '초록우산' 되기까지
1989년 MBC TV 수사 드라마 '수사반장'이 18년(총 880회)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던 날, 박영한 반장 역의 배우 최불암이 읊조린 이 마지막 대사는 한국 현대사를 꿰뚫는 가장 서글프고도 명철한 잠언이었다.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높이 솟아오른 콘크리트 빌딩 숲, 그러나 그 찬란한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짙게 드리운 가난과 소외의 그늘이 있었다. 배우 최불암이 분한 '박 반장'은 그 짙은 어둠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고, 죄지은 자의 신산한 등을 쓸어내리던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일요일 저녁마다 브라운관을 지배했던 '수사반장'은 최고 시청률 70%를 넘나들며 거리의 택시마저 멈추게 만들었던 국민 드라마였다.
박 반장은 흔히 '한국의 콜롬보'로 비유되곤 했다. 그러나 피터 포크의 콜롬보가 어수룩한 겉모습 뒤에 번뜩이는 두뇌 플레이로 범인의 허를 찌르는 서구식 탐정의 변주였다면, 최불암의 박 반장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슬픔과 연민으로 사건의 심연을 응시하는 한국적 리얼리즘의 화신이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깃 세운 바바리코트는 멋을 부리기 위한 서구 누아르의 차용이 아니었다. 밤샘 잠복근무 때 덮고 자는 거친 이불이자, 차가운 시대의 비바람을 막아내던 '민중 형사'의 단벌 갑옷이었다.
극 중 박 반장이 피워 물던 담배 역시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억울한 시신을 마주했을 때 넋을 기리며 한 대, 얽힌 단서 앞에서 고뇌하며 한 대, 절정의 순간에 한 대, 그리고 마침내 범인을 검거한 뒤 인간의 덧없는 욕망과 비애를 곱씹으며 피워 문 마지막 한 대까지. 그 네 대의 담배 연기는 곧 시대를 향한 탄식이자 희로애락의 은유였다. 1972년 당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불암 씨를 따라 담배를 네 대나 피우는데, 온 국민이 따라 할까 염려된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 흡연을 줄여달라 당부했던 일화는 박 반장의 손짓 하나가 국민의 일상과 얼마나 밀착돼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작곡가 윤영남이 짓고 타악의 거장 류복성이 연주한 오프닝 음악('빠바바바밤~ 빠바바바밤~')이 울려 퍼지면, 안방극장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법정이 아닌 인간 탐구의 장으로 변모했다.
박 반장 곁에는 묵직한 김상순, 우직한 조경환, 날카로운 남성훈 등 저마다의 인간미를 지닌 형사들이 있었고, 김영애·이휘향·노경주로 이어진 여순경들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며 수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여기에 사형만 20회, 무기징역만 30여 회를 선고받으며 '국민 악역'으로 군림했던 배우 이계인 등의 열연은 가해자 역시 구조적 가난과 결핍에 떠밀려 괴물이 되어버린 당대 보통 사람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임을 웅변했다.
시청자들은 박 반장을 허구의 인물이 아닌 현실의 구원자로 여겼다. 방송국으로 찾아와 바람난 남편을 잡아달라거나 억울함을 풀어달라 읍소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반면 전두환 신군부 시절에는 "사회정의가 구현됐는데 왜 이리 범죄가 많으냐"는 고위층의 억지스러운 잣대로 수개월간 방영이 중단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요구는 권력의 외압마저 꺾고 박 반장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냈다.
이처럼 시대의 공기를 온전히 호흡했던 박 반장의 숨결은 세대를 건너 생명력을 이어갔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송강호 분) 형사가 백광호와 어울리며 시그널 송을 흥얼거리던 장면은 불합리한 1980년대를 버티게 해 준 상징에 대한 오마주였다.
그리고 2024년 프리퀄 MBC TV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을 통해 박 반장은 다시금 부활했다. 배우 이제훈이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청년 박영한을 맡아 형사의 원형을 빚어냈고, 1화에 백발의 노신사로 특별출연한 최불암은 35년 만에 손때 묻은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후배를 격려하며 드라마사의 가장 감동적인 바통 터치를 완성했다.
최불암이 구축한 박영한은 결코 전지전능한 영웅이 아니었다.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는 부하 형사의 손을 쥐고 쓴 소주 한 잔과 함께 "참아"라는 말로 주저앉히고 마는, 시대의 폭력 앞에 무력했던 보통의 한국 중년 아저씨였다. 그러나 그 타협과 비겁함 뒤에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 눈물과 부끄러움이 고여 있었다.
과학수사나 첨단 프로파일링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박영한이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명징하다. 죄를 묻기 전에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고, 메마른 정의보다 뜨거운 연민을 품었던 그 텁텁한 바바리코트의 품. 최불암의 박영한은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던 한국인들에게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말해주던, 가장 따뜻한 양심의 보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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