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게임스컴 세션서 자체 '블랙스페이스 엔진' 제작 기술 공개
200㎢ 파이웰 대륙…보이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설계
150명 정원에 320명 몰려…소니·캡콤·CDPR 개발진도 관심
[쾰른(독일)=뉴시스]오동현 기자 = 산등성이 너머로 보이는 마을과 탑이 단순한 배경 그림이 아니다. 이용자가 눈으로 발견한 곳은 어디든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도착한 그곳에서 또 다른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탐험이 꼬리를 문다.
펄어비스가 약 200㎢에 달하는 오픈월드 '파이웰 대륙'을 설계하면서 세운 원칙은 분명했다. '플레이어가 보는 곳은 실제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펄어비스는 24일(현지시간) 독일 쾰른에서 열린 개발자 세션에서 자체 개발한 '블랙스페이스 엔진'을 활용해 붉은사막의 오픈월드를 제작한 과정과 기술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에는 붉은사막의 월드 빌딩을 총괄한 안근태 아트레벨실장과 렌더링 기술을 개발한 김진환·윤진호 게임엔진그래픽스실장이 연사로 나섰다.
현장 반응은 뜨거웠다. 150명 정원 세션에 320명이 몰렸다.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의 루이스 빌레가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비롯해 캡콤, CD프로젝트레드, 닌텐도 등 글로벌 주요 게임사 개발진도 참석했다.
◆아름다운 숲보다 길을 찾을 수 있는 숲
개발진은 단순히 넓고 사실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용자가 직접 발을 딛고 재미를 느끼는 '플레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현실의 숲을 그대로 옮겨오면 나무와 풀이 지나치게 빽빽해 길을 잃기 쉽다. 개발진은 시각적 사실성보다 이용자의 탐험 동선을 먼저 고려했다.
길목 주변은 시야를 틔워 편안하게 이동하도록 꾸몄다. 아이템이나 이야기가 숨겨진 공간은 탐색의 재미를 살려 밀도 높게 구성했다. 전투 지역 역시 적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지형을 정돈했다. 시각적으로 화려해도 이동을 방해하는 지형은 과감히 깎아내거나 없앴다.
멀리 보이는 탑이나 성채 같은 건축물도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능선에서 발견한 목적지에 도달하면, 그곳에서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도록 공간을 짰다. 개발진은 이를 '풍경 발견→이동→탐험→새로운 풍경 발견'으로 이어지는 반복 구조라고 설명했다. 내비게이션 화살표만 쫓아가는 대신, 이용자 스스로 풍경을 보고 다음 목적지를 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반복 작업은 자동화…중요한 장소는 직접 제작
방대한 대륙을 일관된 품질로 채우기 위해서는 제작 방식도 달라져야 했다. 개발진은 먼저 대표 지역을 정교하게 만든 뒤 도로 주변의 식생 밀도, 지형의 경사와 침식 형태, 랜드마크 배치 등을 규칙으로 정의했다.
이후 절차적 생성 기술과 3차원(3D) 제작 도구인 후디니 등을 활용해 같은 규칙을 다른 지역으로 확장했다. 나무와 풀, 바위처럼 넓은 지역에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환경 요소는 지형의 높이와 경사, 간격, 밀도에 맞춰 자동으로 배치했다.
자동화의 목적은 단순히 더 많은 지역을 빠르게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반복 작업에서 아낀 시간을 대표 지역의 품질과 다양성을 높이는 데 다시 투입했다. 하나의 샘플을 개선하면 같은 제작 규칙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품질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다.
반면 퀘스트와 이벤트가 발생하는 장소, 주요 랜드마크 등 플레이 경험에 직접 영향을 주는 콘텐츠는 개발자가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넓은 공간은 시스템으로 채우되 이용자의 기억에 남아야 할 장소에는 사람의 디자인 의도를 담은 것이다.
◆2만개 구역 나눠 필요한 공간만 불러온다
약 200㎢ 규모의 세계를 끊김 없이 보여주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블랙스페이스 엔진은 거대한 대륙을 2만 개 이상의 독립 구역으로 잘게 쪼갰다. 이용자의 시선과 이동 방향에 맞춰 필요한 구역만 실시간으로 불러오는 방식이다.
플레이어와 가까운 공간은 높은 수준의 세부 묘사로 보여주고, 멀리 떨어진 공간은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한다. 원거리의 나무와 숲은 개별 나뭇잎을 모두 표현하는 대신 숲 전체의 형태와 윤곽을 유지하는 '임포스터' 기술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메모리와 성능 부담을 줄이면서도 멀리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유지한다.
파이웰의 환경은 시간과 날씨,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비가 내리면 지면의 반사와 조명, 원거리 시야가 함께 변하고 눈이 오면 대기와 하늘의 밝기, 가시거리가 달라진다.
바람이 불면 주변 풀과 나무, 옷자락과 먼지가 동시에 흔들린다. 캐릭터가 지나가면 수풀이 눕고, 공격을 받으면 풀이 베어진다. 나무에 직접 기어오르거나 충격을 줘 쓰러뜨릴 수도 있다. 배경이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이용자의 행동에 즉각 반응하는 셈이다.
개발진은 붉은사막의 오픈월드 제작 방향을 '더 많이 만드는 것'에서 '더 잘 만드는 것'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반복 작업은 시스템에 맡기고, 확보한 개발 역량을 탐험의 재미와 주요 지역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는 의미다.
개발진은 "이용자가 언젠가 파이웰의 어느 능선에 서서 저 멀리를 바라보며 그저 계속 걷고 싶어지는 순간을 느낀다면, 저희가 바랐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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