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유일 국가등록문화유산 '옛 상북면사무소'
수년째 잠긴 문…인근 주민 주차장으로 활용돼
울주군, 주민 의견 수렴해 장기 활용 방안 모색
[울산=뉴시스] 구미현 기자 = "문화유산은 있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이달 초 찾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이벌 역사문화관'. 한식 기와지붕을 얹은 단층 목조건물이 도로변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지어진 옛 상북면사무소다. 울산에 남아 있는 유일한 근대 공공청사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102호이자 울산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역사문화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건물 주변에는 강아지풀 등 잡풀이 높게 자라 있었고, 그 사이엔 쓰레기로 추정되는 방문객이 버리고 간 빛바랜 종이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이 공간의 시간이 멈춘 듯한 인상을 더했다.
주차장은 차량으로 가득했지만 역사문화관을 찾은 방문객은 아니었다.
인근 주민은 "역사문화관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역 주민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근처에 볼일이 있을 때 주차장만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이벌 역사문화관은 상시 개방하지 않는다. 별도 상주 인력도 없어 전시를 희망하는 단체가 있을 때만 문을 연다. 일반 시민이 관람하려면 상북면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해 개방을 요청해야 한다.
울주군은 시설 보수와 정비를 맡고 있지만 역사문화관의 운영은 상북면행정복지센터가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문화유산을 접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 건물이 가진 역사적 가치다.
옛 상북면사무소는 1932년 건립된 한식 기와지붕과 일본식 목조건축 양식이 절충된 형태의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울산 곳곳에 비슷한 관공서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며 남아 있는 건물은 이곳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활용도는 문화유산의 위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대미술품을 수집해 온 구철회씨는 "문화재는 보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보고 체험해야 비로소 살아 있는 공간이 된다"며 "지금처럼 문을 잠가 두는 것은 문화유산을 활용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이 공간을 근대미술품이나 지역 근현대사를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여러 차례 울주군에 전달했지만 "여건상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해서 들었다고 했다.
구씨는 역사문화 자원을 하나의 관광벨트로 묶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룡포 근대역사거리를 보면 오래된 건물 하나만으로 관광객이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함께 소비한다"며 "옛 상북면사무소 역시 언양읍성, 언양성당, 반구천의 암각화, 천전리 각석, 영남알프스 등 울주의 역사·문화 자원과 연결하면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울주군도 현재의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울주군에 따르면 역사문화관은 상북면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활용 방안을 마련한 뒤 울주군의 허가를 받아 조성됐다. 현재 내부 사정으로 문을 닫아놓은 것 역시 상북면에서 결정해 운영하고 있다.
울주군청 관계자는 "옛 상북면사무소는 국가등록유산인 만큼 활용하면 좋겠지만 건축물의 연식이 오래돼 사용에 제한사항이 있다"며 "당초 상북면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역사문화관이 조성됐고 주민들이 지역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물품과 유물을 기증해 전시해 놓은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역사문화관 운영과 폐쇄 여부 등은 상북면이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최근 역사문화관의 장기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상북면에 보냈다"고 말했다.
다만 울주군이 곧바로 새로운 활용 방안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상북면이 역사문화관을 처음 조성할 당시 참여했던 주민들의 의견을 다시 듣고 현재 전시된 유물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부터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울주군 관계자는 "상북면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 향후 활용 방안을 정리하고 취합하면 그 결과를 우리에게 알려주기로 했다"며 "그 결과에 따라 국가유산 관련 사업이나 울산시와의 사업, 울주군 자체 사업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주군은 우선 상북면의 주민 의견 수렴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문화유산의 문이 계속 닫혀 있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지역의 한 향토사 연구가는 "문화유산은 보존만으로 생명을 이어가기 어렵다.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그 공간에 담긴 이야기가 전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건물을 지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오래된 공간이 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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