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보강 공사 도중 총 메고 北으로 달려간 군인…39년만에 무죄

기사등록 2026/05/09 12:24:10 최종수정 2026/05/09 12:32:45

군인, DMZ 넘어 北으로 달려가다가 체포

군사법원, 무기징역…항소심서 징역 15년

재심 "불법 구금·가혹행위로 월북 자백받아"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1987년 부대원 20여명과 함께 최전방 감시초소(GP) 진지 공사 도중 소총을 멘 채 월북을 시도한 혐의로 옥살이를 한 신병이 39년 만에 혐의를 벗었다. 사진은 북측 감시초소(GP) 앞에 북한의 대남 방송 스피커가 보이는 모습. 2026.05.09.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1987년 부대원 20여명과 함께 최전방 감시초소(GP) 진지 공사 도중 소총을 멘 채 월북을 시도한 혐의로 옥살이를 한 군인이 39년 만에 혐의를 벗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구희근)는 지난달 29일 최모씨에 대한 재심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징역 15년을 내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의 '월북 시도 의혹' 사건은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5월 30일 신병교육을 마친 그는 강원 고성 소재의 부대에 전입한 뒤 같은 해 6월 16일 소초원 20여명과 함께 방책선 보강 공사에 투입됐다.

당시 실탄 15발이 들어간 M16 소총을 멘 채 작업에 임한 최씨는 방책선의 소통문을 따고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며 북측으로 뛰어갔다. 부대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50m 가까이 북측 지역으로 간 그는 갈대밭에서 은신한 끝에 검거됐다.

군사법원은 적진도주미수 등 혐의를 받는 최씨에 대해 지난 1987년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항소 끝에 그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5월 최씨의 재심을 받아들인 재심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내렸다. 불법 구금 상태에서 가혹 행위를 받으며 "월북 시도를 했다"고 자백한 진술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군수사관들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고인을 인도받은 때로부터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피고인을 구금했다"며 "결국 구속영장 집행 전까지 피고인을 불법으로 체포하여 구금한 상태"라고 판시했다.

이어 "진술강요 등 가혹행위를 하면서 수사를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피고인에 대한 군검찰에서의 수사 또한 피고인의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군 수사관들이 월북을 인정할 때까지 각목으로 때리면서 위협해 요구하는 대로 진술했다"고 진술한 점도 참작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적진도주미수 및 국가보안법위반의 점에 대하여 피고인이 적진으로 도주 또는 탈출할 의사가 있었다거나, 군용물절도미수의 점에 대하여 절도의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월북 시도 정황을 두고 편도선염으로 고통을 받던 중 무의식 상태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갔다는 피고인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북측으로 뛰어간 상황 등에 의하더라도 사건 발생 약 두 달 전인 1987년 4월 15일 군에 입대한 신병이었다"며 "당시 소초원 20여명과 함께 진지를 공사하는 과정에서 소초원들이 보는 앞에서 북측으로 뛰쳐나가 곧바로 추격을 당하여 체포당하는 등 탈출이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인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친척 중에 월북한 가족 또는 북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이 있지도 않다"며 "피고인에게 달리 월북할 동기가 있었다고 볼 사정도 없다"고 부연했다.

한편 검찰은 과거 인권침해 사건을 두고 재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7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재심 사건 관련 ▲불법 구금 여부 확인을 위한 자료 확보 방안 강구 ▲인용 가능성 등 고려 항고 신중 검토 ▲신속한 심리 종결 위한 노력 ▲업무 체계 효율화 및 인력 배치 조정 등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서울고검에 접수된 재심 건수는 137건으로, 2023년(23건)의 약 6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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