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나는 그저 혼토진을 구경하는 데에 매료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일개 청년에 불과했고 소설가였기에 정치인이나 학자의 재능은 갖추지 못했다. 주제넘을 정도로 위대한 야심 같은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보고 들은 걸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아니면 순간의 진실한 감정을 기록하거나."
대만 작가 양솽쯔의 신작 '1938 타이완 여행기'(마티스블루)가 출간됐다. 양솽쯔는 지난해 대만 최초의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1938년 일제강점기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한 일본인 소설가가 1년간 대만 체류 중 연재한 여행기를 발견해 이를 소설로 재구성했다는 설정이 바탕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일본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 그는 통역을 맡은 대만 여성 왕첸허의 도움을 받아 대만 곳곳을 여행하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대만의 모습과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치즈코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청춘기'가 현지에서 개봉한 것을 계기로 대만 주재 일본인 부인회 초청을 받아 1년간 머물며 강연과 기행문을 집필한다. 치즈코는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미식'을 택하고, 첸허와 함께 종관철도를 따라 대만 미식 여행을 떠난다. 소설의 목차가 러우싸오, 스키야끼 등 음식 이름으로 구성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서로 같은 한자 이름을 쓰고, 또래의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로 둘은 점점 가까워지는 듯 보이지만, 이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존재한다. 치즈코가 인식하지 못했던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권력 차가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제국주의를 비판하던 치즈코는 "제국이 강제로 옮겨 심은 벚나무는 불쾌하지만, 벚꽃에는 죄가 없다"는 무심한 발언이 첸허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켰는지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시각을 점검하게 된다.
작품은 얼핏 보면 미식 여행을 통해 한 나라를 이해하는 여행소설처럼 읽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식민지배가 개인의 감정과 일상의 층위에 남기는 흔적을 묻는 질문이 놓여있다.
책은 2021년 타이완금정상, 2024년 일본번역대상 등을 수상했고, 전 세계 12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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