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중공업 손배 소송서 1심 승소
소녀 시절 일제에 의해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정신영(94) 할머니는 18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이같이 밝혔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정 할머니를 향해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재판부의 판결에, 정 할머니는 질곡어린 세월 동안 참아온 눈물을 고요히 떨어트렸다.
1930년 나주에서 태어난 정 할머니는 1944년 나주대정국민학교 졸업 직후인 그해 5월 만 14세 나이에 '일본에 가면 좋은 학교도 다니게 해주고 밥도 잘 준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다.
강제노역 현장에 동원돼 착취당하던 중에는 도난카이 대지진을 겪어 고향에서 함께 끌려온 친구 7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노역 피해자들은 1945년 도야마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던 중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 할머니는 가족들의 장래에 지장이 될까 싶어 징용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기 위해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했으나 미쓰비시측이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등 훼방을 놓으면서 판결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화폐 가치 변동을 보전하지 않고 당시 기준 77년 전 액면가만 지급하면서 당시 '악의적인 모욕', '고령의 피해자에 대한 우롱' 등의 성토가 잇따랐다.
4년여 지체된 재판 끝에 이날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낸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향해 거듭 사죄를 촉구했다.
"말 한마디 없이 누릴 것만 누리고 있다"며 강제노역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다. (대한민국이) 해방되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피해를 겪은 할머니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연금기구가 보내온 931원에 대해서도 사과해야한다. 과자값만도 못한 보상"이라고 꼬집으며 "살아남은 강제노역 피해자가 몇 명 남아있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입장문을 내고 "일본이 진정 법치주의를 지향하고 국제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라면, 일본은 미쓰비시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한국 사법부 판결을 따르도록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도 "지난해 3월 윤석열 정부는 제3자변제라는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을 통해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일본 전범 기업에게 면책을 주고 말았다"며 "오늘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일본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 범죄에 대해 우리 헌법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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