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에 탈북민 넘기려던 김모씨 실형
죄형 법정주의 원리 위배라는 반론도
탈북민 비보호 결정, 이중 처벌 논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북한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탈북민에 대한 법적 조치 여부에 대한 한국 국내법상 미비점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탈북어민 2명을 북송할 당시 동료 16명을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점 ▲흉악범으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 ▲귀순보다는 도피 의사가 컸다는 점 ▲한국 사법 체계에서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 등을 탈북어민 북송 이유로 들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수사기관 수사나 법원 결정 없이 북송해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어겼다는 점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송환한 것은 직권 남용이라는 점 ▲고문의 위협이 있는 국가로 범죄혐의자를 송환해 유엔 고문 방지협약을 위반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북송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양측 간 이견이 드러나는 핵심적인 대목은 탈북민이 북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귀순했을 때 이를 한국 정부가 처벌할 수 있느냐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 이 흉악범과 일반 국민이 함께 거주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처벌 가능성을 떠나 한국법에 따라 수사와 기소, 공판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2014년에 있었다. 북한 주민이 북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첫 사례였다.
김씨는 북한의 한 탄광지대 작업소에서 근무하며 작업소를 탈출하려는 노동자들을 단속하는 등 보위부 일을 하던 인물이었다.
김씨는 2006년 4월 중국 현지에서 일하던 탈북민 A씨를 상대로 "딸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약속 장소로 나오게 한 뒤 두 차례에 걸쳐 북한 보위부로 넘기려 했다. 이를 눈치 챈 피해자 A씨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으면서 약취·유인은 실패했다.
이후 김씨는 북한 내에서 한국 영화를 시청하고 중국제 휴대전화를 소지한 사실이 적발돼 수감됐다가 중형에 처해질 것이란 말을 듣고 2006년 12월 검찰소를 탈출해 두만강을 건너 탈북, 2007년 한국에 입국해 귀순했다.
김씨 사례는 북한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한국에서 사법적 처벌이 이뤄진 최초의 사례였다.
이 때문에 이번 탈북어민 2명 역시 한국 법원에서 처벌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김웅기 과거청산통합연구원장은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에서 범한 범죄의 형사처벌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북한에서 북한주민이 북한법의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는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남한법에 의해서도 범죄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어 "즉 북한법의 개인적 보호법익은 남한에서도 보호하는 법익이다. 따라서 이를 처벌하는 것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는 것도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개인적 법익을 보호함은 개인의 기본적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범죄는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짚었다.
남북한 형법이 각각 제정될 때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 상대방의 형법 제정에 관여를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상대방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국민 주권의 원칙과 죄형 법정주의 원리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남한의 주민들에게 북한의 형사법을, 북한의 주민들에게 남한의 형사법을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근대국가 기본 원리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범죄를 저지른 탈북민을 모두 한국에서 처벌한다면 북한에서 작은 잘못을 한 탈북민도 한국에 들어온 뒤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의 한국행을 가로막는 조치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2019년 탈북어민 북송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간 한국 정부기관은 범죄를 저지르고 북한에서 빠져나온 탈북민들에 대한 처벌을 대부분 무마해왔다.
나아가 통일 후 자신들이 처벌받는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에게 통일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이는 일반적인 범죄자는 물론, 반인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북한 고위직에게는 북한 정권을 지키려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김웅기 원장은 "현행 정착지원법상 보호·비보호 결정의 차이는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착지원법상의 보호와 지원이 필수적인데 비보호 결정이 내려진 살인 등 중대한 범죄인의 경우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남한 사회 정착도 매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비보호 결정은 형사 처벌은 아니지만 형사 처벌 이상의 처벌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더해 형사 처벌까지 하게 된다면 실질상으로 이중 처벌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