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반은 기업인 후반은 교육인…최명재 민사고 설립자 별세

기사등록 2022/06/26 19:36:48 최종수정 2022/06/26 20:22:51

파스퇴르 유업 창립·국내최초 저온살균 우유 도입

사재 1000억원 들여 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

[서울=뉴시스] 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자 최명재 전 파스퇴르 유업 회장. (사진=민족사관고등학교) 2022.06.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동효정 기자 =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의 설립자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이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26일 민사고 측은 "(고인은) 삶의 전반전은 기업인으로, 후반전은 교육인으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시대의 반항아이자 기인이었다. 국민에게 차별화된 질 좋은 우유를 공급하겠다는 신념으로 기존 유가공업계와 치열하게 싸웠고, 고교평준화 흐름 속에서도 민족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영재 교육을 주창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힌 적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학교 설립에 재산 대부분을 바친 부친처럼, 고인의 평생 꿈은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고인의 강한 염원과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오늘날의 민사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1927년 전북 김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거쳐 경성경제전문학교(서울대 상대의 전신)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 이후 상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택시 운전사로 전직했다가 1960년대 직접 성진운수를 세웠다. 1970년대 중반엔 이란에 진출해 유럽과 중동을 오가며 물류 사업을 키웠다.

이후 고인은 물류운송업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낙농업에 뛰어들어 1987년 강원도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창립했다.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 우유를 도입했고, 품질을 인정 받아 국내 기업 최초 미군에 우유를 납품했다. 

기업활동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그는 지난 1996년 오랜 숙원이던 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그는 사재를 털어 민사고를 설립했고 투자 규모가 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강연에서 최 이사장은 "나는 장사꾼이다. 기왕 장사를 시작한 바에는 큰 장사를 하려고 한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학교를 만들고 영재를 교육해 장차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나로서는 수천, 수만배 이익을 얻는 셈이 아니겠는가"라며 교육의 뜻을 밝혔다. 

고인은 설립 초기 직접 교장으로 취임해 교육을 이끌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던 그는 학생들에게 "조국과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고, 출세가 아니라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고는 1995년 10월17일 설립 인가를 받아 중학교 성적 전국 상위 1% 이내인 학생을 대상으로 3학급 30명을 선발해 개교했다.

민사고 개교 이듬해 외환 위기가 터졌고 고인은 2004년 회사를 매각한 뒤 경영에서 물러나 민사고 운영에만 주력했다. 설립 초기 학비와 식비 등이 전액 무료였지만 재정 지원이 중단되면서 등록금을 받는 형태로 변경됐다.

2010년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시범 운영학교로 지정된 뒤 2010년 6월30일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로 전환됐다.

현재 고인의 장남인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이 유지를 이어 학교 운영을 맡고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8일 오전 6시 20분이다. 영결식은 28일 오전 9시 민사고에서 학교장으로 거행되며 장지는 민사고가 자리한 횡성군 덕고산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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