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카타르, 수년간 각국 정치 지도자 피신 도와
사생활보호·보안, 호화숙소 및 금전 보관장소 제공
추후 정치적 영향력 얻기 위한 투자로 해석돼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함락되자 해외로 도피했다. 당시에는 행방이 묘연했다가 사흘 만에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금횡령 등 수많은 의혹이 가니 대통령을 둘러싼 가운데 그가 왜 UAE로 도피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19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UAE는 수년간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피신을 도왔다.
전직 태국 총리인 탁신 친나왓과 잉락 친나왓 남매와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스페인 국왕, 당에 의해 추방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팔레스타인 모하메드 달란, 암살당한 예멘 전 대통령의 아들 아흐메드 알리 압둘라 살레도 UAE에 머물렀다.
카타르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국가들은 정치범, 망명 지도자 등에게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도하, 아부다비, 두바이의 고층 5성급 호텔을 제공한다고 한다. 또는 인공 해안선을 낀 은둔적이고 궁궐같은 해안가 숙소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사생활 보호와 금전 보관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항의 홍채 스캔 기술, 수많은 보안 카메라를 통한 광범위한 감시 등은 이들의 보안 보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AP통신은 이러한 이유로 가니 대통령이 UAE 아부다비를 찾았을 것이고, 탈레반 정치 지도자들이 수년간 카타르에 거주해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 카타르에서는 지난 1년 동안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 회담이 열렸다. 이전에는 탈레반과 미국 간 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기 이전 아프간 정부 측과 탈레반 측 고위층이 평화회담을 열었던 곳도 카타르 도하였다. 탈레반의 공동설립자이자 정치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도 최근 카타르에서 아프간으로 귀국했다.
UAE와 카타르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이들이 정치인과 최고 지도자들을 도움으로써 추후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외교 평의회 걸프 연구원 신지아 비앙코는 "카타르는 탈레반과의 협상 중재자로 자리매김했다. 일반 대중을 고려하면 (탈레반 지도자를 보호한 것이) 위험한 결정이었지만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가니 대통령은 지난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기 직전 가족 및 참모들과 도피했다. 당시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관 대변인 니키타 이스첸코는 "4대의 자동차에 돈이 가득 차 있었고 나머지는 헬기에 실으려 했지만 모두 들어가지 않았다. 일부는 활주로에 방치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어디로 도피했는지 소식이 끊겼다가 지난 18일 UAE 외무부는 가니 대통령이 UAE에 있다고 발표했다.
가니 대통령은 UAE 외무부 발표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탈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궁에 있을 때 보안 요원으로부터 탈레반이 카불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나는 슬리퍼를 벗고 부츠를 신을 기회도 없이 아프간에서 추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피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인도 WION방송에 따르면 가니 대통령은 "만일 내가 그곳에 머물렀다면 아프간인들 앞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또 다른 대통령이 됐을 것"이라며 자신은 UAE에 망명할 의시가 없고, 아프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화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천억원 상당을 챙겼다는 보도에 대해선 "UAE공항에 도착할 때 나는 빈손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을 팔아넘기고 자신의 목숨과 이익을 위해 도피했다는 말을 믿지 말라. 그런 비난에는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아프간에 남은 정치 지도자들은 가니 대통령을 체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를 배신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공금을 횡령했다는 이유에서다.
타지키스탄 주재 아프간 대사관의 모하마드 자히르 아그바르 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가니 대통령이 도피 당시 1억6900만 달러(1981억여원)을 소지했다고 말했다.
또 비스밀라 칸 모하마디 아프간 전 국방장관은 18일 트위터에서 가니 대통령이 조국을 팔아먹었다고 주장하며 "조국을 팔아넘긴 자들은 반드시 체포돼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인터폴이 가니 대통령을 체포해야 한다는 해시태그도 붙였다.
한편 아프간 내부에서는 탈레반 저항군 결집 움직임도 포착됐다.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헌법에 따라 자신이 아프간의 임시 대통령임을 자임했다. 아그바르 대사는 살레 부통령을 아프간의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살레 부통령은 반 탈레반 단체인 '아프간 구국 이슬람 통일전선' 속칭 '북부동맹'의 수장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와 판지시르주에서 저항군 세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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