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건범 대표 "쉬운 우리말은 차별의 위험 줄여줍니다"

기사등록 2020/09/14 10:46:26 최종수정 2020/09/14 15:03:20

[우리말 먼저 ④] 한글문화연대 대표

1급 시각장애인→벤처사업가→국어운동가

"'귀머거리·소경', 차별의 말빛 묻어 있어"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9.14.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글날이 공휴일(2013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이 돼 우리 말글살이에 대한 인식이 그나마 나아졌죠. 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세상이 자꾸 변하니까, 우리말 사용에 대한 혼란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인터뷰 초반에 분명히 짚고 가자며 이렇게 말했다.

"'한글'은 한민족이 쓰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 쓰는 문자의 이름이고, '한국어'는 전통적으로 한민족이 쓰는 언어를 이르는 말이라는 점. 글자 자체에 초점을 둔 말이라면 '한글'이 적합하고, 언어 자체에 초점을 둔 말이라면 '한국어'가 적합합니다."

매년 '한글의 중요성이 한글날에만 소환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최근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만나 이 대표는 매년 한글날에 소환되는 인물. 오는 10월 9일 '제574돌 한글날'을 앞두고 미리 만나 한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들어봤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9.14. yesphoto@newsis.com

최근 우리사회는 한국어와 외래어의 짬뽕으로 외계어같은 신조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긴 문장을 짧게 줄이는 줄임말도 일상용어로 침투한지 오래다.

이 대표의 생각은 어떨까. "줄임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 문화 개념이 섞이면서 새로운 개념이나 표현이 생긴다면, 줄일 수도 있죠.산업통상자원부를 산자부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전경련으로 부르는 기성세대도 줄임말을 사용하는 말살이를 살고 있어요."

그렇다고 "줄임말을 사용하는 젊은 친구들을 타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우리 낱말의 뿌리로 새말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반가워했다.

"밀당(밀고당기기), 빼박(빼도 박도 못하다) 등은 줄여서 구어로 쓰던 말이었죠. 음 하나씩을 빼서 만들어진 건데, 심하게 줄인 말 중에는 '꿀잼'(정말 재미있다)도 있어요. 이런 현상은 괜찮다고 봐요. 나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한 거 같지만, 어떻게 새 말을 만드는 건지 익힐 수 있기 때문이죠."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9.14. yesphoto@newsis.com

다양한 방법으로 '새 말'을 만들어가는 시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 대표는 "우리가 우리말의 주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국가가 정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말글살이를 빈약하게 만들 위험이 큽니다. 스스로 말을 붙여보고 만들도록 장려를 해줘야 해요."

글과 말에 대한 엄숙주의의는 배격한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나오는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연함의 예죠. '늑대와 춤을' '주먹 쥐고 일어나'처럼 결합된 말을 잘 쓸 줄 알아야 해요. '전셋집'도 한자와 우리말이 결합한 거죠. 어휘가 다양하게 늘어나야 문화 민족이 될 수 있어요. 더 섬세하게 생각하고, 민감하게 표현할 수 있죠. 젊은 친구들이 사용하는 말을 비공식적 언어로 격을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말도 새로운 옷을 입는 건 당연하죠."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9.14. yesphoto@newsis.com

하지만 여기에 외국어가 끼어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대단한 죄가 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전, 생명, 재산 등 복지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은 공공의 언어를 사용해야 해요. 모어(母語)는 우리가 자라나면서 배운, 바탕이 되는 말입니다. 부모와 가족과 또래와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익힌 것이죠. 말의 뿌리인 건데 외국어는 그렇지 않아요. 사용하는 사람의 학력, 학벌의 표지가 됩니다. 공공언어를 생산하는 공무원, 언론 관계자 분들이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정책 관련 보도자료, 기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야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그것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언어에 숨어 있는 혐오의 낯빛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됐다. 성차별, 장애인차별, 소수자차별, 지역 차별 등이다. 1급 시각장애인인 이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섬세하게 생각해왔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9.14. yesphoto@newsis.com


"귀머거리(시각장애인), 소경(시각장애인) 등에는 차별의 말빛이 묻어 있죠. 민초의 토박이말이 상대방을 낮잡아 보이는 말로 사용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봐요."

코로나19는 한글문화연대의 활동에도 악영향을 줬다. 청소년·대학생 동아리인 '우리말 가꿈이' 오프라인 활동이 힘들어지면서 최근 19기 발대식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코호트 격리' '드라이브스루 진료' '팬데믹'처럼 국민에게 낯선 의료 쪽의 전문 용어를 좀 더 쉬운 말로 바꾸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한글문화연대는 2000년 창립됐다. 이 대표는 2012년부터 대표 직을 맡아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등을 이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한 때 벤처사업가를 지냈으며 '내 청춘의 감옥', '파산' 등을 펴낸 작가이기도 한 이 대표가 국어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인권' 때문이었다.

"쉬운 우리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민의 알권리가 좌우됩니다. 사람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살아가는데 말이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어요. 쉬운 말일수록 혐오,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대방에게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능력이라는 것은 가려져 있는 차별이에요.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거대하게 조장하는 거죠. 공정한 것이 중요한데, 쉬운 우리말은 그 차별의 위험을 줄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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