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다선, 친박 출신에 일부 초선 가세 "강경 투쟁"
5일 의장단 선출, 12일·15일 상임위 선출 모두 '보이콧'
15일 의총장에는 오랜만에 대여(對與) 규탄 피켓 등장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미래통합당이 국회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집단 퇴장이나 보이콧을 반복하는 '익숙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여 투쟁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통합당은 지난 5일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해 국회의장 선출을 보이콧한 데이어 12일과 15일에도 통합당 전체 의원들이 본회의 참석을 보이콧했다.
특히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15일에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법사위를 강탈하나', '야당되든 여당되든 법사위는 민주당만?' 등의 글귀가 적힌 여당 규탄 피켓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독개원 강행, 독재의 시작! 이제 대한민국에는 국회는 없습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펼쳐든 채 "민주주의 파괴하는 의회독재 민주당은 각성하라" 등의 규탄 구호도 외쳤다.
원내 지도부는 장외 투쟁을 대여 투쟁 수단으로는 검토하지 않고 있고 있지만, 당 내 소수 강경파들이 원(院)구성 협상 결과에 만족하지 않아 강력한 대여 투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통합당은 강경 노선 기로에 놓였다.
통합당내 복수의 의원들에 따르면 최근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한 '강경파'는 영남권 다선 의원과 범친박 출신 의원, 여기에 일부 초선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본회의 참석 거부를 비롯한 강력한 원내 투쟁의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원내 지도부가 국토위·정무위·문체위·교육위 등 '알짜 상임위' 위원장 자리 7개를 통합당에 가져오는 대신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에 내주는 가안을 지난 12일 의원총회에 들고 왔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혀 추인이 무산된 것도 강경파의 목소리에 사실상 제압된 대표적인 예다.
여당에 법사위원장을 빼앗기면 모든 상임위원장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3선 의원 일동 명의로 대국민 성명서를 이끌어낸 것도 옛 친박계 출신 김태흠 의원(3선)이었다고 한다.
당시 의총 전만 해도 3선 의원 사이에선 원내 협상카드로 상임위원장 포기를 일절 고려하거나 논의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일부 3선 중에는 대여 견제라는 명분을 쌓기 위해 법사위에 집착하는 대신 핵심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는 실리를 택해야 한다는 온건파도 없지 않았다.
3선 장제원 의원은 "법사위를 뺏기더라도 국토, 정무, 농림해양수산, 산자중소벤처, 노동, 예산, 교육 분야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면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 만큼은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라며 "이것이 야당의 존재가치를 팔아먹는 건가. 언제부터 민생과 산업, 교육이 떡고물이 되었나"라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도 '슈퍼 여당'을 견제할 마지막 수단이 법사위라는 논리를 김 의원이 밀어붙이고 친박계 박대출 의원 등 다른 3선 의원들이 수긍하면서 법사위 없는 상임위는 단 한 곳도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게 됐다.
15일 의총에서도 법사위원장직을 포기하는 대신 실리를 택하자는 협상파보다는 법사위 사수를 요구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득세했다고 한다.
영남권인 4선 김기현 의원과 3선 김도읍 의원도 법사위를 민주당에 내줄 바에야 차라리 전 상임위를 모두 포기하자는 의견을 의총장에서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최다선인 5선 조경태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사퇴도 불사할 만큼 강경 투쟁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김기현 의원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고 표현할 만큼 법사위 사수에 강경한 입장이다. 김 의원은 "통합당이 법사위를 지키자고 하는 것은 알짜 상임위 몇 개 더 가져와 실속을 챙겨보자는 전술적 차원의 주장이 아니다"라며 "몇 개 떡고물 같은 상임위원장을 대가로 야당의 존재가치를 팔어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충청권 출신으로 당내 최다선(5선)이자 21대 전반기 국회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에 내정된 정진석 의원도 "원구성 협상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국회부의장을 하지 않아도 좋다"며 법사위 양보 불가론으로 원내 투쟁을 지지했다.
일부 초선 의원들도 제1야당다운 강한 야성을 동력삼아 당의 강력한 원내 투쟁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초선들은 민주당과 자리 싸움 대신 원 구성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해 정책 투쟁으로 여당에 맞서자는 협상파를 지지했지만 서서히 강경파 쪽으로 기울고 있다.
통합당 초선의원들은 지난 12일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한데 이어 14일에는 비례대표 의원을 중심으로 비공개 모임을 갖고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초선 의원들은 15일에도 비공개 회동 후 기자회견을 열어 법사위원장을 양보하지 않는 여당을 성토하고 국회의장실을 거듭 항의 방문했다.
초선들은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장치를 활용해 핵심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거대 여당이 법사위라는 국회의 균형과 견제 장치까지 빼앗는다면, 국회는 청와대의 뜻을 알아서 받드는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
박형수 의원은 지난 10일 의원총회에서 "지금 우리의 선택은 백의종군 뿐이다. 우리 당 의원들이 모두 법사위원장을 빼앗긴다면 다른 상임위원장은 의미가 없다고 하니 민주당에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라고 하고 우리당 3선 이상 의원들은 상임위원장을 포기하자"고 제안했다.
박수영 의원도 "장제원 의원이 SNS에서 밝힌 문체위 대신 산자위를 받고 법사위는 포기하자는 안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며 "어차피 이해찬 대표가 법사위를 안 준다면 이것저것 구걸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 3선 의원들이 결의한 대로 법사위를 안 주면 상임위를 하나도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초선 의원들의 이러한 강경한 태도에 통합당 한 재선 의원은 "우리 당 초선 의원들은 상당수가 지방 기초의회 등에서 경험을 쌓고 올라와서 초선 같지 않다"며 "요즘 초선 의원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3선 중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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