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여의도·용산 개발계획 한달만에 '좌초'…사실상 물건너 가

기사등록 2018/08/26 16:30:55 최종수정 2018/08/26 17:56:51

김현미 비판에도 끄덕없는 박원순

집값 상승하자 자진철회 수순 밟아

'도시재생' 브랜드에도 흡집 생겨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관련 서울시의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2018.08.26.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보류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그 계획을 다시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초순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수립 계획을 발표한 뒤 서울 집값이 상승세를 타자 1개월여 만에 백기를 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박 시장의 지난달 10일 싱가포르 출장 당시 발언으로 촉발됐다. 박 시장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여의도를 통째로 재개발하고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 철로는 지하화한 뒤 지상은 마이스(MICE) 단지와 쇼핑센터, 공원 등으로 개발하겠다"며 여의도와 서울역∼용산역 구간 개발 청사진을 밝혔다.

 박 시장의 이 발언은 '여의도 재구조화 종합구상' 등으로 해석되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국감정원이 지난달 9일부터 16일까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 서울 아파트 가격이 0.10% 상승하며 전주(0.08%) 대비 상승폭이 확대됐다. 여의도와 용산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7월 셋째주 각각 0.24%, 0.20%로 전주 대비 0.1%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서울 집값 흐름이 심상치 않자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 등을 앞세워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꾀하던 국토교통부가 발끈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회에 출석해 박 시장의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도시계획은 시장이 발표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진행되려면 국토부와 긴밀한 협의가 이뤄져야 실현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시 정책의 실현가능성 자체를 문제 삼았다.

 김 장관은 서울역∼용산역 철로 개발과 관련해서도 "철도시설은 국가 소유라서 중앙정부와 협의해서 함께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여의도와 용산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박 시장의 발언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이같은 반응에도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맞불을 놓았다.

 박 시장은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의 팟캐스트인 '서당캐'에 출연해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종합적 가이드라인과 마스터플랜 아래 개발이 진행되는 게 좋다"고 강행 의지를 밝혔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8.08.21.since1999@newsis.com
그는 또 "지역별·주제별로 (개발계획을) 잘 정리하자는 얘기를 했는데, 갑자기 땅값이 오르고 난리가 났다"며 부동산 시장이 자신의 계획을 왜곡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김 장관과 박 시장 간 갈등이 격화되자 서울시와 국토부는 접점 찾기를 시도했다.

 진희선 행정2부시장 등 서울시 부동산 관련 담당 공무원들과 손병석 1차관 등 국토부 고위 공무원들은 이번 달 3일 '국토부-서울시 정책협의체'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주요 개발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양 기관이 함께 관리하자"고 합의했다. 또 시와 국토부는 '시장관리 협의체'를 구성해 격주로 회의를 열어 이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이처럼 균열이 봉합되는 듯 했지만 박 시장 쪽에서 다시금 갈등의 불씨를 제공했다. 1개월간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생활한 박 시장이 이번 달 19일 옥탑방을 떠나며 수조원대 강북 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박 시장의 강북 우선투자계획에는 경전철 사업 재추진, 빈집 매입 후 청년·신혼부부 주택으로 공급, 공공기관 강북 이전 등 내용이 담겼다. 이 계획은 강북지역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됐다.

 당초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으로 자극을 받았던 여의도와 용산 외에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동작구, 동대문구, 은평구, 중구 등에서도 집값 상승세가 나타났다.

 지난 15일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 매매가격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3.47% 올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박 시장의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언이 나온 7월부터 오름세가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 시장의 발언이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8·2 부동산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상황이 악화되자 박 시장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표와 추진은 현재의 엄중한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해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자신의 발언이 부동산시장을 자극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이 플랜이 과거의 재개발 관점으로만 해석되고 관련 기사가 확산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이런 과열 조짐이 생긴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시가격 인상 방침을 밝혔지만 아파트 값 상승 흐름이 꺾이지 않는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부동산 중계소에 부동산 매물 안내표가 붙어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주(0.15%) 대비 2배 이상 커진 0.34%를 기록해, 지난 2월 말 0.40% 오른 이후 26주 만에 최고치 기록하고 있다. 2018.08.26. amin2@newsis.com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이 사실상 중단 수순을 밟고 있음도 인정했다. 그는 "예상치 않았던 부동산 투기나 과열이 일어나면서 이것을 지금처럼 그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 돼야 그 다음에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시장은 서울 집값 상승의 원인을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움직임에는 반발했다.

 그는 "사실 여의도와 용산도 전면 철거하고 새롭게 개발하겠다는 게 처음부터 아니었다. 개별 단지 재개발 과정에서 난개발이 되면 안 되므로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기존 재개발은 안 된다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지역 발전 구상이 마치 모든 건물을 한꺼번에 올리는 것처럼 부동산적 관점으로만 해석되면서 부동산 과열조짐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강북에서 제가 했던 발표를 자세히 보시면 과거의 도시재생적 방식이나 마을공동체 복원 등 다양한 내용들이 들어있다"며 "지역 개발이 무조건 토건사업으로 이해되는 게 사실은 70년대식 발상이라 저는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고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의 인식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역대 최초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한 뒤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던 박 시장은 이번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잠정 중단 선언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서울시장 취임 후 전면 철거 재개발 방식은 단호히 배격해왔다. 이런 철학과 원칙, 또 정책방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발표가 부동산시장에서 개발 호재로 해석되는 등 혼란스런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그간 본인이 추구해온 '도시재생' 브랜드에도 적잖은 생채기가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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