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70세를 맞은 '살아 있는 바이올린계의 전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워너클래식을 통해 33번째 정규앨범 '아름다운 저녁'(Beau Soir)을 발매했다. 정경화가 희수(稀壽)를 맞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에 발매한 이번 앨범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레와 프랑크 그리고 드뷔시의 작품들로 꾸며졌다.
27일 오전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정경화는 "앨범을 많이 냈으면 익숙한 데가 있을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힘들어서 '죽어도 다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그만큼 기력과 정성을 다 들였다는 거예요. 레코딩을 할 때마다 제게 들리는 소리로 인해 생기는 기대감과, 레코딩을 완료해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하고 일치가 안 될 때 너무 실망하고 좌절을 하거든요(웃음)."
젊은 날의 정경화는 연주력뿐만 아니라 강력한 카리스마로 인해 '바이올린의 여제(女帝)'로 통했다. 날카롭고 예민하다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아직 손주를 못 봐서 아쉽다며 본인은 손녀를 원한다는 정경화의 현재 얼굴은 인자함 그 자체다. 전날 일흔번째 생일을 맞았던 정경화는 이날 '70'이라고 적힌 숫자 초에 붙은 불을 입으로 바람을 내 웃으며 껐다. 세상을 달관한 할머니의 미소였다.
정경화가 프랑스 작곡가들의 곡으로만 이뤄진 '프렌치 앨범'을 발매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첫 번째는 로열 필하모닉과 함께 쇼송, 생상, 라벨의 작품을 연주한 1978년 앨범이었다. 두 번째는 라두 루푸와 짝을 이뤄 녹음한 1980년 드뷔시,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였다.
이번 프렌치 앨범에는 그녀가 처음으로 녹음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그녀가 두 번째로 녹음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담겨있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녹음은 7년 간 호흡을 맞춰온 자신의 듀오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이와 더불어 각 작곡가를 대표하는 유명한 소품들로 앞으로 언젠가 태어날 손녀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자장가'(포레)와 '생명의 양식'(프랑크) 그리고 올해로 타계 100주년을 맞는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와 '아름다운 저녁' 등이 실렸다.
특히 '한국반 앨범'에는 정경화의 시그니처 곡으로 통하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32년 만에 재녹음돼 보너스 트랙으로 실렸다. 정경화가 녹음해 국내에 친숙해진 이 곡은 그녀가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담겼었다.
정경화 본인 역시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다. 지난 2005년 9월 손가락 부상을 입고 연주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모교인 줄리어드 음대에 가서 교수로 생활을 하다 2010년 아슈케나지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연주를 하지 못했을 당시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지난 2011년 작고한 이 여사는 첼리스트 정명화·정경화·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 즉 정트리오를 키워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렇게 긍정적인 분은 없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앞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죠. 힘들 때는 공부를 하면서 자기 성장의 기회를 가지라고 하셨죠."
덕분에 본인도 젊은 연주자들에게 관심을 쏟는다. 예술의전당 30주년을 기념해 9월12일 듀오 콘서트를 갖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젊은 연주자들과 호흡도 꾸준히 맞추고 있다. 스마트폰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찾아 듣고 콘서트 보는 걸 즐긴다는 정경화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놀랍도록 잘한다"면서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않게 계속 격려를 해주고 싶어요. 한국의 젊은이들과 계속 사회 생활을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즈미는 약 40년 전 일본에서 열린 정경화의 콘서트를 청중으로 지켜보다 그의 팬이 됐고, 그의 음악적인 지원자 또는 지지자가 됐다. 정경화는 "옥신각신하며 많은 정이 들었던 사이에요. 정말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일흔의 나이에도 정경화의 올해 왕성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30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4월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케너의 협연으로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연다. 3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도 같은 공연을 한다. 6월3일 롯데콘서트홀에서도 케너와 함께 오른다.
정경화가 이번 앨범 녹음과 함께 최근 콘서트에서 사용하는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킹 막시밀리안'. 오스트리아 황제 페르디난트 막시밀리안 요제프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바이올린 여제'에게는 덧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남은 악기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지만 볼륨은 작지 않아요. 스트라디바리의 황금기에 만들어진 악기죠." 정경화의 음악인생 여전히 황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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