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타 마케팅' 역습…지갑 얇아진 관객, 연극·발레로

기사등록 2026/10/25 06:30:00

'스타 캐스팅=매진' 깨지고 뮤지컬 시장 역성장

배우 개런티 거품에 재탕…'회전문 관람' 실종

美 브로드웨이, 개런티 상한 두는데 한국은 없어

[서울=뉴시스] 유니버설발레단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2026. 10. 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티켓값 20만원 시대, '스타 캐스팅=매진'이라는 한국 공연계의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불경기로 지갑이 얇아진 관객들이 고가의 뮤지컬 대신, 연극과 발레 등 대체 장르로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25일 문화계에 따르면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KOPIS)가 발표한 '2026년 상반기 공연시장 통계'에서 뮤지컬은 공연 건수가 13.1% 증가했음에도 티켓 판매액은 22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다. 국악과 무용 역시 전년 동기 대비 티켓 판매액이 줄어들며 감소세를 나타냈다. 

반면 연극 티켓 판매액은 105% 폭증한 759억원을 기록하며 뮤지컬의 빈자리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이와 함께 침체된 무용 시장 내에서도 '발레'만은 유일하게 전 지표(공연 건수·회차·예매수·판매액)가 상승하며 나홀로 성장세를 보였다.

무용의 공연 건수는 9.0% 늘었으나 티켓 판매액(-17.9%), 예매 수(-8.9%), 회차(-4.0%)가 모두 역성장한 가운데, 발레 티켓 매출액(58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36.2% 급증해 한국무용(-30.9%)과 현대무용(-72.7%)의 가파른 감소세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뮤지컬 시장의 위축은 여름 성수기까지 이어졌다. 한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던 마니아들의 '회전문 관람'이 끊기면서, 막강한 팬덤을 자랑하는 박효신이 주연을 맡은 대작 뮤지컬 '베토벤'(6월 9일~8월 11일 공연)마저 일부 회차에서 객석을 다 채우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위기가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승우·박효신·김준수 등 뮤지컬 주연으로 출연하는 톱스타 배우들이 회당 5000만~6000만원 안팎의 개런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일반 대극장(1200석 기준) 회당 티켓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높은 개런티 부담은 결국 티켓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연극 '갱更' 공연 장면.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는 제작자와 극장주들이 연합(리그)을 통해 주당 개런티 상한선을 두고 출연료를 통제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장치가 없어 소수 스타가 제작비를 독식하는 구조다.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어려울수록 제작사들의 스타 의존도는 오히려 더 높아져 배우 몸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며 "여기에 최근 불경기로 2030 세대의 현금 유동성까지 말라붙으면서 티켓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연 기획 관계자는 "스타를 캐스팅해서 제작비 20여억 원을 썼다고 하는데, 배우 개런티 비중이 대다수"라면서 "대극장 돌아가는 레퍼토리는 뻔하고, 예전 작품들을 10주년 등의 명목으로 오래 우려먹는다. 작품도 업그레이드 안 됐는데 예전에 했던 똑같은 공연이 그대로 올라오면서 17만~19만원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작품의 질을 높여야 사람들이 돈을 쓰지, 스타들을 데려온다고 관객들이 19만원을 덥석 지불하겠느냐"라며 "예전에 14만~15만원 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어' 했는데, 19만 원이 되니까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스타만 앞세운 고가의 뮤지컬에 지친 관객들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와 확실한 무대 경험을 보장하는 연극과 발레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대작 연극들이 상반기 시장의 흥행을 견인한 가운데, 스타 없이 6~9만원대 가격으로 대극장급 볼거리를 증명해 낸 공공 극장의 웰메이드 대작들이 호평을 받았다.

또한 전체 무용 시장의 부진 속에서도 유일하게 성장세를 기록한 발레는 성인 취미 발레 붐과 미디어 영향으로 새로운 팬덤을 형성하며 탄탄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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