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절정 전인데 SNS 타고 2030 발길
경복궁 돌담길·은행나무에 카페까지 인기
러닝 열풍에 패션 매장도 속속 들어서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이수진 인턴기자, 정승혜 인턴기자 = "은행나무는 예전부터 아름다웠어요. 지난해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죠."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10년 넘게 작은 카페를 운영해 온 한 상인은 최근 달라진 거리의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서촌의 효자로는 오랫동안 청와대와 경복궁을 오가는 길목이었지만, 최근에는 은행나무와 고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이들이 찾는 나들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오늘자 서촌'이라는 제목으로 은행나무 단풍 현황을 전하는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지난 19일 기준 SNS에서 '서촌'을 검색하면 약 104만 개의 게시물이 표시됐다. '금빛 한국', '노랗게 물든 서촌' 등의 문구가 붙은 게시물에는 단풍이 언제 절정에 이르는지 묻거나 현장 상황을 알려줄 '서촌 특파원'을 찾는 댓글이 이어졌다. 산림청이 예상한 단풍 절정 시기는 오는 11월2일이지만, 방문객들의 발길은 벌써부터 이어지고 있다.
은행나무길은 경복궁 서쪽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는 효자로에 위치한다. 경복궁역 4번 출구 인근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뻗은 이 길에는 은행나무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다.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너머로 고즈넉한 궁궐 담장이 펼쳐진다.
종로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효자로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정부서울청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 350m 구간에는 은행나무 34그루가 줄지어 서 있다. 높이 8~13m의 나무들이 4~8m 간격으로 늘어서 있어 길을 따라 걷는 내내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효자동과 통의동, 청운동 등 서촌 일대에 심어진 은행나무는 약 440그루에 달한다.
경복궁 서쪽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서촌은 조선 시대 중인들이 주로 살던 마을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 재개발 위기를 겪었지만 한옥 보전 정책으로 옛 골목의 모습을 지켰다. 이후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서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은행나무길은 어쩌다 젊은 층의 발길을 끄는 명소가 됐을까. 직접 효자로를 찾았다.
◆"돌담길과 고궁의 정취까지"…은행나무에 더해진 서촌의 매력
지난 19일 효자로에 들어서자 은행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과 친구들이 몇 걸음마다 눈에 띄었다. 은행잎은 아직 초록빛이었지만,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방문객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SNS에서 자주 언급되는 효자로의 카페 두 곳은 평일인데도 방문객들로 붐볐다.
한 카페의 통창 너머로는 경복궁 돌담길과 줄지어 선 은행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가 좌석은 빈자리 없이 들어찼고 대기 행렬도 이어졌다. 생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서촌을 찾은 박모(27)씨는 “바로 옆 경복궁도 같이 방문할 수 있고 요즘 인기 있는 공간이 공존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 특유의 악취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곳의 특징이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에서만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가 땅에 떨어져 밟히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종로구 내 은행나무 3943그루 중 암나무는 1574그루로 약 40%를 차지한다"며 "구청은 악취와 보행 불편을 줄이기 위해 매년 은행 열매를 조기에 채취하고 있으며, 효자로 구간의 열매도 이미 수거한 상태"라고 전했다.
인근의 다른 은행나무 명소도 방문객들의 발길을 효자로로 이끈다. 효자로에서 4분 거리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만난 임모(28)씨는 "이곳의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고 역사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효자로의 유명한 카페를 찾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근 서울공예박물관에도 수령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그대로인데 찾는 사람이 달라져"
효자로의 은행나무가 처음부터 젊은 층의 관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 일대에서 10년 넘게 작은 카페를 운영해 온 A씨는 "예전에는 청와대를 방문한 어르신들이 주로 오가던 길이었다"며 "지난해 효자로에 한 카페가 들어서면서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나무는 10년 전에도 아름다웠다"고 덧붙였다.
러닝 열풍도 변화에 한몫했다. 경복궁 주변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한 바퀴를 달릴 수 있어 러닝족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 A씨는 "광화문 일대에서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를 시도 때도 없이 목격한다"며 "스포츠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면서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경복궁 영추문과 이어지는 자하문로10길에는 아디다스를 포함한 패션 브랜드 매장들이 들어섰다. 골목 곳곳에는 소품숍과 문구 편집숍도 자리 잡았다.
새로운 가게들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인근 소품숍에서 수제 카펫을 구매한 한 방문객은 "이제 근처 카페에 가서 풍경을 즐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와 돌담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데서 나아가 주변 가게를 둘러보고 카페에 들르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효자로의 변화는 SNS가 일상적인 풍경을 새로운 소비 대상으로 만드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상적으로 지나쳤던 아름다움을 누군가 발견해 SNS에 올리면, 다른 사람들도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관심이 확산된다"며 "SNS 시대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금전이나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자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관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이 교수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확인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며 "디저트 유행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처럼 좋은 공간이나 풍경에 대한 트렌드도 계속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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