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 콜렉티브, 서울 가을밤에 세운 '기쁨의 신전'…"살아있음을 축하"

기사등록 2026/10/09 11:33:24

8일 예스24 라이브홀 첫 단독 내한…80분간 약 20곡 휘몰아쳐

"낯선 이와 친구 되라"해방의 그루브

심장박동 같은 베이스와 아프로비트…'기쁨은 윤리적 결단'

[서울=뉴시스] 에즈라 콜렉티브 호주 공연.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10.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쁨은 요행처럼 주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슬픔과 체념이 만연한 세계의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길어 올리는 윤리적인 결단에 가깝다. 2023년 영국 재즈 밴드 최초로 머큐리상(Mercury Prize)을 거머쥔 5인조 '에즈라 컬렉티브(Ezra Collective·에즈라 콜렉티브)'. 이들에게 음악은 고립된 자아를 변호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세상의 비관주의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 타인을 향해 기꺼이 문을 여는 환대의 언어다.

에즈라 컬렉티브가 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단독 내한공연을 열고 한국 관객과 조우했다. 한글날(9일)을 목전에 둔 현장은 정갈한 한글 레터링 '에즈라'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팬들을 비롯한 관객들의 설렘으로 일찌감치 데워졌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이들은 '스트리츠 이즈 콜링(Streets Is Calling)'과 '스위트 에코(Sweet Echo)'로 포문을 열었다. 리더 페미 콜레오소(Femi Koleoso·드럼)는 시작부터 스틱을 쥐고 객석의 방어기제를 허물었다.

"오늘 밤 비트가 떨어지면 우리는 완전히 미쳐버릴 겁니다. 파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공간에 계신 모든 분이 서로 친구가 됐으면 합니다. 뒤를 돌아 곁에 선 완전히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네보세요. 어디서 왔는지, 우리 공연을 본 적 있는지 서로 물어보세요. 여러분이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길 바랍니다. 준비됐다면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주세요."

관객들이 망설임 없이 눈을 맞추며, 재즈 특유의 엄숙함 앞에서 위축되던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은 첫 곡의 낙차와 함께 깨끗이 흩어졌다.

무대는 쉼 없이 내달렸다. '셰이킹 바디(Shaking Body)', '노 컨퓨전(No Confusion)', '아잘라(Ajala)', '유 캔트 스틸 마이 조이(You Can't Steal My Joy)' 등이 쏟아졌다. 나이지리아 출신 아프로비트의 선구자 거장 드러머 토니 앨런의 유산을 품은 페미의 드럼은 온몸을 던지는 파워풀한 타격과 변칙적인 엇박, 세심한 완급 조절로 객석의 맥박을 동기화했다. 드럼 여러 대를 번갈아 치듯 엮어내는 복합 리듬(폴리리듬)은 단숨에 긴장감을 조였다 풀었다. 단색의 흰 조명 아래 선 조 아몬-존스의 건반은 기교 과시를 넘어 타악기적 질감과 건반의 물성 그 자체를 또렷하게 울렸다. 제임스 몰리슨의 거침없으면서도 부드러운 색소폰은 보컬을 대신해 선율을 읊었고, 이페 오군조비의 명징한 트럼펫이 맞물린 혼(horn) 섹션은 멜로디의 뼈대를 단단하게 지탱했다.

특히 무대 위에서 가볍게 스텝을 밟던 TJ 콜레오소의 베이스는 화려한 음표 대신 아주 낮은 음역에서 묵직한 여백을 짚었다. 평소 대중음악에서 쉬이 접하기 어려운, 공간의 공기를 뒤흔드는 조용한 저음의 울림은 흡사 공연장 바닥을 울리는 거대한 심장박동 같았다. 그는 "친구들이 연주하는 관악기 소리를 듣고 목소리로 그대로 돌려달라"며 콜 앤드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를 유도, 관객을 합주의 주체로 끌어올렸다. 무대와 객석의 얄팍한 경계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런던=AP/뉴시스] 에즈라 컬렉티브(Ezra Collective)
공연 중반부 페미는 드럼 채를 잠시 내려놓고 밴드의 기원을 돌아봤다.

"한국 팬들이 보내준 '제발 와달라'는 수많은 메시지와 트윗을 늘 지켜봐 왔습니다. 어제 서울에 도착해 걸어 다니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었습니다. 우리는 14년 전 런던의 청소년 클럽에서 재즈와 아프로비트를 사랑하던 아이들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저 런던에서 연주하는 게 꿈이었던 우리가 이곳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입니다."

이어 그는 '기쁨'의 본질을 역설했다. "행복과 슬픔은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늘 '기쁨(joy)'을 경험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장소를 '기쁨의 신전(temple of joy)'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밴드의 사명입니다. 지금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 함께 축하합시다. 온라인에서 우리 공연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을 봤을 텐데, 바로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빅토리 댄스(Victory Dance)', '에브리바디(Everybody)'를 거쳐 대표곡 '후안 파블로(Juan Pablo)', '갓 게이브 미 피트 포 댄싱(God Gave Me Feet For Dancing)'으로 이어지는 사이 객석은 보컬 없이도 멜로디를 합창하는 거대한 댄스플로어가 됐다. 앙코르라는 작위적인 의례 없이, 연주가 끝나자마자 멤버들은 객석과 진한 포옹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땀에 젖은 채 퇴장했다.

약 80분 동안 20곡 가까이 쏟아낸 무대.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관통할 때 비로소 도달하는 환희의 힘을, 에즈라 컬렉티브는 서울의 가을밤에 또렷하게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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