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투입·41개 도시·지역 74팀 참여…창원 전역에 200여점
“공명은 같음 아닌 차이”…성산아트홀선 작품 간 연결 느슨
창원의집·진해역선 장소와 작품 어우러져 ‘공명’
좋은 작품 넘어 ‘왜 창원에서 조각비엔날레인가’ 답해야
[창원=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성산아트홀에 들어서자 난데없는 ‘키치의 산’이 관객을 맞는다. 한요한과 박기인의 미디어 설치작품 '창원을 봄'이다.
화려한 문양의 카펫이 깔린 계단 위로 물건들이 산처럼 쌓였다. 석고상과 낡은 모니터, 조화와 전구, 선풍기와 파이프가 뒤엉켰다. 고전 조각을 흉내 낸 흰 여인상은 한 손에 파란 비닐봉지를 들었다. 우아함과 싸구려,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충돌한다.
번쩍이고 요란하다. 일부러 질서를 흐트러뜨린 키치의 미학이다. 화려하다 못해 어지럽다. 마치 버려진 이미지와 사물들이 쌓여 만든 ‘쓰레기 산’ 같다.
제8회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열리는 성산아트홀 로비의 첫 풍경이다.
로비 안쪽에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불쑥 솟아 있다.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예스의 ‘핵무기 제로(Zero Nukes)’다. 공기 주입식 버섯구름 위에 ‘ZERO NUKES’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핵무기 감축이 아니라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강렬한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런데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전시로 이어지는지는 선뜻 잡히지 않는다.
작품은 많은데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30일 개막하는 2026창원조각비엔날레는 ‘공명장(Resonance Field)’을 주제로 세계 41개 도시·지역에서 74팀 81명의 작가가 참여해 200여 점을 선보인다. 예산은 20억원 규모다.
성산아트홀을 중심으로 창원의집·창원역사민속관, 진해역 일대, 마산어시장까지 도시 곳곳을 전시장으로 확장했다. 조혜정 감독과 중국의 장쥔(Jiang Jun) 감독이 공동예술감독을 맡았다. 외국인 감독과 공동감독 체제로 열리는 것은 창원조각비엔날레 사상 처음이다.
29일 기자들과 만난 조혜정 감독은 "공명은 같음이 아니라 차이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색이 하나로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색을 유지한 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이번 비엔날레는 그 모습을 서로 다른 역사와 기억이 한 도시에 중첩된 창원에서 찾았다.
마산의 바다, 진해의 군항과 철도, 계획도시 창원의 산업적 시간이 하나의 역사로 봉합되지 않고 공존한다. 비엔날레는 이 차이를 도시의 결함이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이 부딪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공명의 조건’으로 바라본다.
기획 의도는 선명하다. 문제는 그 ‘차이’가 실제 전시장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느냐다.
개별 작품에는 분명 힘이 있다. 그러나 작품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공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들이 왜 한 비엔날레 안에서 만나야 하는지, 그 만남에서 어떤 새로운 관계가 발생하는지가 관객에게 선명하게 전달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성산아트홀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작품들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조각과 설치, 영상과 오브제가 이어지지만 작품과 작품을 연결하는 맥락은 느슨하다.
‘공명장’이라는 개념은 설명 속에서는 존재하지만 전시장에서는 관객 스스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 적지 않다. 차이는 넘치지만 그 차이를 ‘공명’으로 바꾸는 큐레이팅의 연결부가 충분히 작동하는지는 의문이다.
◆성산아트홀 밖에서 살아난 ‘공명’
반면 성산아트홀을 벗어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창원의집과 창원마루에서는 작품이 전통건축의 시간과 여백을 끌어안으며 장소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창원의집 퇴은정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작가 마날 알도와얀(Manal AlDowayan)의 황동 입술 세 점 ‘내 말을 들어줘(Listen to Me)’가 놓였다. 거대한 입술은 말하기와 침묵, 듣기의 관계를 묻는다. 열린 정자와 대숲 사이에 놓인 입술은 독립된 조각을 넘어 주변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창원마루에서는 조소희의 ‘…어디…’가 누각을 가로지른다. 손으로 반복해 뜨개질한 실이 거대한 그물처럼 공간을 채우면서도 완전히 막지는 않는다. 작가가 말하는 ‘공백을 짜는’ 작업이다. 실 사이로 빛과 바람, 관객의 시선이 드나든다.
작품이 전통건축을 압도하지도, 건축이 작품의 배경으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이곳에서는 작품과 장소가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공명장’이라는 주제가 비로소 감각적으로 읽힌다.
옛 진해역에서도 장소의 힘이 작품을 끌어올린다.
김수자의 ‘연역적 오브제-더 그리드’는 벽돌을 반복적으로 쌓아 만든 작업이다. 직조와 바느질, 보따리를 통해 오랫동안 탐구해온 ‘위빙(Weaving)’의 개념을 건축적 차원으로 확장했다.
철길의 선형 구조와 반복되는 벽돌의 그리드가 만나면서 오래된 역사는 단순한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장소와 작품이 제대로 만났을 때 ‘공명’이 무엇인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감각할 수 있다.
◆묵직한 특별전…그러나 본전시와의 ‘사이’
성산아트홀 지하 1층 특별전 ‘조각 이전의 조각(Sculpture Before Sculpture)’도 묵직하다.
조혜정 감독이 기획한 특별전은 조각이 근대 서구미술에서 독립된 장르로 제도화되기 이전부터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어온 방식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김윤신, 심문섭, 마더성(Ma Desheng), 박석원, 정관모, 잔왕(Zhan Wang), 주밍(Ju Ming) 등 동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깎기·비우기·묶기·쌓기’라는 원초적인 조형 행위를 통해 살핀다.
동아시아 조각의 흐름과 물질성을 짚는 작품들은 비엔날레의 장르적 기반을 단단하게 환기한다.
그러나 이 묵직한 특별전에서 나오면 다시 서로 다른 언어의 본전시 작품들이 이어진다. 특별전이 던진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본전시의 다양한 실험이 어떻게 하나의 ‘공명장’으로 연결되는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결국 이번 비엔날레의 편차는 작품 자체보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드러난다.
좋은 작품은 적지 않다. 창원의 역사와 장소를 제대로 끌어안은 작품도 있다.
조 감독의 말처럼 공명이 ‘차이’에서 시작된다면 이번 비엔날레에는 그 차이가 충분하다. 문제는 차이를 모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차이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냈느냐다.
성산아트홀과 창원의집, 진해역, 마산어시장으로 전시장을 도시 전체에 펼친 시도도 흥미롭다. 하지만 장소가 많아지는 것과 하나의 비엔날레가 도시 전체로 확장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흩어진 전시장 사이에 어떤 서사와 관계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왜 창원에서 ‘조각’ 비엔날레인가
올가을 전국은 비엔날레 시즌이다. 광주와 부산, 제주에서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경기도자비엔날레에 이어 창원조각비엔날레까지 가세했다.
비엔날레가 넘쳐날수록 질문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왜 이 도시에서 이 비엔날레를 해야 하는가.
지역 비엔날레에서 장소는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정체성이 될 수 있다. 최근 제주비엔날레는 제주의 돌과 신화,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동시대미술의 언어로 끌어들이며 제주라는 장소 자체를 전시의 방법으로 삼았다.
창원에도 재료는 충분하다.
산업도시의 역사와 조각이라는 장르적 기반이 있다. 통합도시인 마산·창원·진해에는 서로 다른 기억과 풍경이 켜켜이 쌓여 있다. 실제 이번 전시에서도 창원의집과 창원마루, 옛 진해역처럼 작품과 장소가 제대로 만난 순간에는 ‘공명장’이라는 주제가 살아났다.
문제는 그 순간들이 하나의 비엔날레를 이루는 힘으로까지 이어지느냐다.
20억원의 예산, 200여 점의 작품, 세계 41개 도시·지역의 작가들을 불러 모은 뒤 남아야 할 것은 규모가 아니다.
왜 창원에서 ‘조각’ 비엔날레를 하는가.
좋은 작품을 모으는 것과 좋은 비엔날레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모태로 2012년부터 격년제로 이어온 창원조각비엔날레는 국내 유일의 조각비엔날레를 표방한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작품이 아니다. ‘창원에서만 가능한 조각비엔날레’가 무엇인지에 대한 더 선명한 답이다.
전시는 11월15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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