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회사·해외 은행 거쳐 이란 연계 숨기고 달러 송금
2024년 美은행 경유 이란 연계 의심 거래 약 90억 달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 당국자와 연구자들을 인용해 매년 수십억 달러의 이란 자금이 미국 은행의 달러 결제 계좌를 거쳐 이동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의 지난해 분석도 소개했다. FinCEN이 미국 금융회사들의 신고를 분석한 결과, 2024년 미국 은행 계좌를 거친 거래 가운데 이란의 제재 회피 금융망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 규모는 약 90억 달러(약 12조1500억원)였다.
이런 거래에는 해외 은행이 미국 은행에 계좌를 두고 고객의 달러 송금 처리를 맡기는 '환거래' 방식이 쓰인다. 서로 다른 나라의 은행들이 자금을 주고받도록 연결하는 국제 금융의 기본 장치다.
이란은 홍콩·두바이 등에 위장회사와 환전소를 두고, 미국 은행과 거래 관계가 있는 해외 은행을 통해 돈을 보낸다는 게 당국자와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위장회사 등이 이란과의 관계를 숨기면, 결제를 맡은 미국 은행이 이란 관련 거래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이란은 미국의 감시를 피하려 위안화나 암호화폐를 선호하지만, 무역과 중동 내 친이란 세력 지원, 군사용 기술·부품 구매 과정에서 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WSJ은 전했다.
WSJ이 확보한 대금 청구서(송장)에 따르면, 이란 업체는 중국 공급업체에 회로기판과 센서 15만 개를 주문했다. 청구서에는 대금 65만 달러(약 8억8000만원)를 뉴욕의 중개 은행을 거쳐 공급업체의 중국 내 은행 계좌로 송금하도록 적혀 있었다.
회로기판과 센서는 자동차 제조에 쓰이며 무기·드론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다만 이 주문의 대금이 실제로 지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재무부는 지난달 28일 이집트 국영 미스르은행의 아랍에미리트(UAE) 지점들이 미국 은행의 환거래 계좌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을 제안했다. 재무부는 이 지점들이 2024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란의 제재 회피 금융망에 속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 103곳의 거래 약 18억 달러(약 2조4300억원)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규제 대상은 UAE 내 5개 지점이며 이집트 본점과 다른 나라의 지점은 제외된다. 계좌 이용 금지 조치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재무부는 다음 달 1일까지 규칙안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 미스르은행은 미 재무부와 협의하고 있으며 관련 법과 규정을 준수한다고 밝혔다. UAE 지점들도 정상 영업 중이라고 설명했다.
WSJ은 해외 은행에 대한 압박과 함께 미국 은행의 환거래 점검도 강화해야 한다는 일부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을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일레인 데젠스키 경제·금융권력센터장은 "제재 회피 금융망을 찾아내기는 극도로 어렵지만, 이란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무부는 미국 은행의 규정 준수 담당자들과 비공개로 만나 이란 자금 흐름에 대한 감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이란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는 의심 거래를 법에 따라 신고하는 등 제재 이행을 위해 재무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WSJ이 인용한 제재 전문가들은 미국 은행을 과도하게 압박하면 은행들이 해외 은행과의 환거래 업무를 줄여 국제 결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재 강화로 은행을 통해 이란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제재가 강해질수록 거래 당사자들이 달러 대신 다른 결제 수단을 찾으려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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