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 보호하려다 거래 끊길라…"촘촘한 제도 설계 필요"[빨라진 정산, 유통가 셈법③]

기사등록 2026/09/05 12:01:00 최종수정 2026/09/05 12:22:23

"직매입·중개 비중, 재무건전성 등 고려 필요"

"거래 관행 조정 위한 시간적 완충 장치 둬야"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대규모유통업법·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선중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협력정책관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관련 발제를 하고 듣고 있다. 2024.09.23.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정산주기 단축 논의 과정에서 업계는 단계적 단축, 업태와 매입 유형 등을 고려한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산 대금 지급 기한을 획일적으로 앞당길 경우 플랫폼의 자금 부담이 거래 구조와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법 개정 과정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대표적인 우려는 중소 납품업체의 거래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산주기가 짧아지면 플랫폼의 운전자금 부담과 금융비용이 커지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플랫폼이 신규 입점이나 상품 취급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업계는 소상공인과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를 앞당겨 보호한다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거래 구조와 사업 특성에 따른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입장문에서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를 앞당기고 거래 안전성을 높이려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산기한을 획일적으로 단축하면 유통업체의 운전자금과 정산 시스템에 급격한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온라인 유통과 홈쇼핑은 소비자 주문과 동시에 매출이 확정되는 구조가 아니라 청약철회와 반품·환불, 카드 정산, 상품 검수 등을 거쳐야 하는데, 정산기한을 일률적으로 단축하는 방식보다는 거래 유형별 특성을 반영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의결한 개정안도 거래 구조 차이를 일부 반영했다. 직매입 거래의 대금 지급 기한을 상품 수령일로부터 현행 60일 이내에서 35일 이내로 줄이고, 백화점 등에서 활용되는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 거래는 현재 월 판매 마감일부터 40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한 판매 대금을 20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했다.

다만 보다 세부적인 정산기한 설정이 필요하다는 학계 의견도 있다. 한국경영학회에 실린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 연구'는 직매입·중개 비중, 플랫폼 규모, 재무건전성 등까지 고려해 정산기한을 설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논문은 재무 건전성 기준에 따른 세이프 하버(Safe-Harbor) 조항 도입도 제시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유동비율이나 안정적인 운전자본 비율을 유지하는 플랫폼에 대해서는 정산주기 규제를 유예하거나 완화함으로써, 재무적으로 취약한 플랫폼에 규제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완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벤처 업체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대규모유통업법·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공청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4.09.23. 20hwan@newsis.com
해외에서도 유통업계의 거래 구조와 산업 특성을 고려해 정산기한을 일률적으로 단축하기보다는 일정 수준의 예외를 두는 사례가 있다.

유럽연합(EU)은 대금 지급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인 지급기한을 두면서도 거래 당사자 간 합의와 거래 특성 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유통시장에서도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계약에서 상품의 회전율이나 거래 형태 등에 따라 지급 조건을 달리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단계적 단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플랫폼과 납품업체가 재무 구조와 거래 관행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적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급격한 정산기한 단축은 유통업체의 매입 규모와 상품 구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와 납품대금의 안정적인 지급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산의 '속도'보다 거래의 '안정성과 자율성'을 방점에 둬야 한다. 유럽 등 해외에서도 기업의 규모와 산업, 특성, 거래 유형에 따라 예외 사항을 폭넓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티메프 사태는 정산 주기보다는 유용의 문제가 본질이었다"며 "획일적인 정산 주기 단축보다는 판매대금 보호 장치 강화 등 여러 장치를 펼쳐 놓고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afk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