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9시간 일했는데 월급 0원…스페인 농장, 가축 급수 호스로 몸 씻었다

기사등록 2026/07/31 14:16:24

새벽 2시부터 주 7일 노동…첫 석 달 월 300유로 뒤 임금 끊겨

성관계 요구 거부 뒤 폭행·협박 주장…영하 오두막서 생활

[마드리드=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부에서 양치기들이 양 떼를 인도하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600년 전 양치기들이 겨울에 가축을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시키던 풍습을 재현하는 '양 떼 이동 축제'가 열렸다. 마드리드는 과거 양 떼가 이동하던 주요 경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10.25.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스페인 북서부의 한 양 농장에서 하루 최대 19시간, 주 7일 일하고도 석 달 뒤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한 모로코 출신 이주여성이 경찰에 구조됐다. 경찰은 농장과 관련된 남성 3명을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했다.

영국 가디언은 30일(현지시간)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의 농장에서 일했던 50대 모로코 여성 파티마(가명)의 사연을 보도했다.

경찰은 2023년 말 양 농장에서 한 여성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부르고스·바야돌리드 지역 인신매매 전담 경찰은 약 두 달 동안 증거를 모은 뒤 근로감독관들과 함께 농장에 진입했다. 경찰은 파티마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파티마는 2020년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세 번째로 스페인 계절노동에 나섰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취업비자가 취소됐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스페인에 남아 아이와 노인을 돌보거나 빵을 굽는 등 정식 고용계약이 없는 일자리를 전전했다. 주변에는 베르베르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파티마도 스페인어와 아랍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여섯 살 때 아버지의 뜻으로 학교를 그만둬 글을 읽고 쓰지도 못했다.

다른 지역에 살던 오빠의 소개로 파티마는 카스티야이레온의 농장에 들어갔다. 농장주 가족은 처음에는 파티마와 함께 일하던 다른 모로코 여성 모두를 비교적 잘 대해줬다.

[마드리드=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부에서 한 양치기 소년이 양 떼를 인도하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600년 전 양치기들이 겨울에 가축을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시키던 풍습을 재현하는 '양 떼 이동 축제'가 열렸다. 마드리드는 과거 양 떼가 이동하던 주요 경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10.25.
그러나 파티마는 근로계약서도 받지 못한 채 첫 석 달 동안 월 300유로(약 49만원)씩만 받았고, 이후에는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월 300유로가 2026년 스페인 최저임금을 12개월 기준으로 환산한 월 약 1425유로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농장주 가족은 체류 허가를 받아주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약 18개월 뒤 함께 일하던 여성이 체류 허가를 받아 농장을 떠난 뒤 파티마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파티마는 사료 운반과 양젖 짜기부터 농작물을 심고 거두는 일까지 혼자 떠맡았다고 말했다.

농장 일은 오전 2시에 시작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채소를 심고 거두는 일부터 사료 운반과 양젖 짜기, 닭장 청소까지 맡으면서 노동시간은 하루 최대 19시간으로 늘어났다.

파티마는 농장주 가족의 한 아들이 성관계를 요구했으며, 자신이 이를 거부하자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남성과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때리고 더 심한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이 남성은 트랙터로 파티마의 발을 밟고 지나간 뒤 더 짓누르겠다고 위협했다고 파티마는 말했다.

폭력과 함께 열악한 주거환경과 이동 통제도 이어졌다는 게 파티마의 주장이다. 그는 난방과 식수·화장실이 없는 오두막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밤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졌지만 가끔 농장을 찾던 모로코인이 건넨 소형 난방기마저 농장주 가족이 가져갔다. 밀린 임금과 체류 허가 진행 상황을 묻자 아버지와 아들이 오두막의 문과 창문을 부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가축에게 물을 주는 호스로 씻고 땅에 판 구멍을 화장실로 사용했다. 농장 밖으로 나가는 것은 2주에 한 번 인근 상점에 갈 때뿐이었으며, 농장주 가족은 경찰과 접촉하면 모로코로 추방될 것이라고 겁을 줬다고 한다.

음식은 늘 부족했고, 조리할 수 있는 시설도 장작 난로뿐이었다. 파티마는 농장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휴대전화를 숨겨두고 가족과 간간이 연락했다.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지만,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수사를 벌이던 경찰이 농장에 도착했을 때 파티마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 생활을 끝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함께 일하던 여성이 떠난 뒤 약 2년간 학대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체포된 남성 3명에 대한 재판은 수개월 안에 시작될 예정이다.

구조된 파티마는 인신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가톨릭 수도회 아도라트리세스의 도움을 받았다. 수도회는 파티마가 숙소와 일자리를 구하고 자녀들과 재회하도록 도왔다. 파티마는 현재 스페인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자격을 얻었다. 그는 사법 절차를 통해 책임이 가려지고 가족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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