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수산나 멜키의 슈베르트 그레이트'
정통 클래식 문법으로 곡의 구조·균형 읽어내
에마르 연륜 담은 타건…여백을 음처럼 다뤄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핀란드 출신 마에스트로 수산나 멜기가 정통 클래식 문법으로 무대에 섰다.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이번 공연에서 버르토크와 슈베르트를 감정의 과잉 없이 악보에 충실한 해석으로 풀어냈다.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026 서울시향 수산나 멜키의 슈베르트 그레이트'가 열렸다. 멜키는 이번 공연으로 17년 만에 서울시향과 다시 만났다. 2009년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를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났던 그는 이번에는 버르토크와 슈베르트를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쳤다.
이날 협연자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 현대음악의 두 거장은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제3번으로 호흡을 맞췄다. 화려한 기교보다 절제와 균형을 앞세우며 작품의 구조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에마르의 타건에는 연륜이 묻어났다.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까지 음악의 일부처럼 다루며 작품의 섬세한 결을 살렸다.
헝가리 민요풍이 짙은 도입부에서는 리듬감을 선명하게 살렸다. 특히 연주 내내 멜키의 지휘를 주시하며 악단과의 호흡에 집중했다. 때로는 현악과, 때로는 관악과, 또 때로는 오케스트라 전체와 어우러지며 유기적인 선율을 빚어냈다.
서정성이 짙은 악장에서는 건반 위를 차분히 걸어 나가듯 연주했다. 살얼음판을 걷듯 건반을 조심스럽게 짚어 나갔고, 멜키도 치밀한 호흡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피아노와의 균형을 유지했다.
멜키는 과도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협연자와의 호흡을 중시했다. 에마르의 흐름을 세심하게 받쳐주며 균형을 조율했고, 현악과 관악은 피아노를 감싸듯 유연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부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채워졌다. 멜키와 악단은 슈베르트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를 연주했다. 작곡가가 세상을 떠나기 약 9개월 전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큰 규모와 웅장한 울림을 지녀 '그레이트'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멜키는 작품을 온몸으로 표현하면서도 감정을 과장하지 않았다. 협연곡에서보다 한층 큰 몸짓으로 악단을 이끌었지만, 모든 움직임은 작품의 구조와 흐름을 살리는 데 집중됐다. 힘찬 추진력 위에 관악의 웅장한 울림이 더해지며 풍성한 음향이 완성됐다.
호른의 유니슨(단원이 같은 멜로디 연주)이 곡의 시작을 알렸다.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는 따뜻한 음색이 공연장을 채웠고, 트롬본은 묵직한 울림으로 악단의 중심을 잡았다. 멜키는 연주 내내 악단의 장대한 울림을 이끌며 곡 전체의 흐름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멜키는 포디움 위에서 춤을 추듯 상체를 움직이며 악단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 몸짓은 과시가 아니라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지휘였다. 스케르초부터 피날레까지 현악의 추진력과 관악의 장대한 울림이 어우러지며 '그레이트'라는 별칭에 걸맞은 장대한 스케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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