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정기감사…"교육적 맥락 고려 안 돼"
전교조, 감사원 앞서 기자회견 후 항의서 전달
중등교사노조 "편파 감사…교육 여건 먼저 점검"
[서울=뉴시스]정예빈 기자 = 서울시교육청 정기감사에서 교원 803명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동일 내용을 작성했다는 감사원 지적이 나오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감사 결과 철회와 교육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23일 오전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교육청 정기감사 결과는 학교 현실을 외면한 결과 중심 감사"라며 감사원에 항의서를 전달했다.
지난 20일 감사원은 '서울특별시교육청 정기감사'를 통해 총 12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확인하고, 서울시교육감에게 주의·통보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지난 2021~2024년 서울시 소재 239개 고등학교 학생부를 점검한 결과, 803명의 교원이 51명 이상 학생의 세부특기사항에 동일한 내용을 기재한 사례가 확인됐다. 중복 기재한 1106건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하나의 문안을 한 해 동안 중복 기재한 사례가 가장 많았고(637건) ▲동일 교사가 전년도 문안을 다른 해 다시 재활용한 사례(39건) ▲하나의 문안을 교육 내용이 전혀 다른 1·3학년에 중복 사용한 사례(3건) 등이 파악됐다.
803명의 교원 중 141명은 101명 이상 학생에게 동일한 내용을 기재했고, 이 중 19명은 2년 이상 같은 방식으로 학생부를 작성했다. 또 18명의 교원은 담당 학급 학생의 70%를 넘는 인원에게 종합의견을 동일한 내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교육부는 가짜 일을 줄이겠다며 연구까지 하고 있는데, 정작 헌법기관이라는 감사원은 학생부 문장만 검사하며 꼬투리를 잡고 있다"며 "같은 교실에서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를 진행하는데, 수십 명 수백 명 학생들의 기록이 모두 판타지 소설처럼 달라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라고 말했다.
교사 정원 감축과 고교학점제 도입이 맞물리며 교사들의 업무 과부하가 심각함을 강조했다. 홍순희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지금 가장 시급한 감사 대상이 학생부 문장의 유사성인지, 아니면 교사들에게 과도한 학생부 기록을 요구하는 제도인지는 감사원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며 "교사들은 가르치는 교과 수가 늘어나면서 수업 준비 시간도 부족하고, 줄어든 정원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놓여 있다"고 했다.
감사원이 시교육청의 신규 교원 및 기간제 교사 채용을 문제로 지목한 데에 대해서는 "교사 감축 폭탄을 던져놓고 학교를 지켜낸 교육청을 죄인 취급하고 있다"고 했다. 감사원은 시교육청이 2021년 초등 교과교원 채용 계획을 수립하면서 예상 결원을 아무런 근거 없이 늘려 신규 교원 303명을 과다 채용했고, 이로 인해 710명의 초과 현원이 발생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홍 지부장은 "윤석열 정권은 경제 논리를 앞세워 2021년 38만998명이던 전국 초중고 정규 교원을 2025년 36만5735명으로 4%(1만5263명) 줄였다"며 "파행 위기에 몰린 학교 현장을 살리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한 것은 교육과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최선의 안간힘'이었다. 현장을 살린 행정을 마치 예산 낭비나 비리인 양 호도하는 감사원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전교조는 교육 당국을 향해 입시 중심의 학생부 제도를 개선하고, 적정 교원 정원을 확보할 것을 촉구했다. 이수일 충남 서천고 교사는 "치열한 입시 경쟁과 대학 서열화 속에서 학생부가 '대입 스펙'으로 쓰이는 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미사여구를 쥐어짜 내야만 한다"며 "학기 말마다 서류 더미에 갇혀 학생들의 손을 놓치는 비극을 더 이상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진심 어린 상담과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생부와 대입 제도를 지금 당장 개혁하라"고 했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중등교사노조)도 감사원이 학생부 중복 기재를 지적하며 관련 교원에 대한 조치와 점검 강화를 요구한 데에 유감을 표했다. 중등교사노조는 "학생을 관찰하지 않은 채 학생부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동일한 문구를 무분별하게 반복하는 행위를 옹호하지 않으나, 학생부 기록이 형식화된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그 책임을 교사의 불성실과 교육청의 점검 소홀로 돌린 이번 감사 결과는 지극히 편파적"이라고 짚었다.
감사원의 판단에 교육적 맥락이 빠진 점도 지적했다. 중등교사노조는 "같은 성취 기준에 도달한 학생에게 일부 공통 표현을 사용한 경우와 수백 명에게 문장 전체를 그대로 옮긴 경우를 모두 같은 '중복 기재'로 집계했다"며 "감사원은 공통 문구가 전체 기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학생별 내용의 추가 여부, 동일한 수행평가와 성취 기준의 적용 여부 등 정작 판단에 필요한 교육적 맥락은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 행정 편의로 정한 인원수와 문장 일치 여부만으로 학생부 기록의 부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등교사노조는 교육부와 감사원에 교원과 업무 지원 인력을 확충하고, 고교학점제로 늘어난 학생부 기록의 분량과 방식을 현실에 맞게 개선할 것을 요청했다. 김희정 중등교사노조 위원장은 "감사원은 교사에게 학생마다 다른 문장을 쓰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가르치고 관찰할 여건이 갖춰져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며 "과목과 기록만 늘리고 이를 감당할 인력과 업무 여건은 마련하지 않은 교육부의 책임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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