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미술관서 26일까지 개인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남은 여과지가 한 폭의 민화가 됐다. 버려질 일상의 흔적은 오래된 한지처럼 시간을 품고, 그 위에 백호와 산수, 고구려 고분벽화와 조선 풍속화가 다시 살아난다.
영은미술관에서 열리는 우보경(69)의 개인전 '회상(Reminiscence)'은 커피 여과지 위에 기억을 덧입혀 전통과 현재를 잇는 작업 146점을 선보인다.
우보경은 1980년 국민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학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그는 타지 생활 중 문득 떠오른 할머니 방의 민화 병풍을 계기로 한국 전통 회화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했다. 현대미술의 중심 뉴욕에서 오히려 한국 민화의 소박한 미감과 상징성에 깊이 매료됐고, 이후 민화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재료다. 작가는 매일 커피를 내린 뒤 남은 여과지를 하나하나 모아 화면의 바탕으로 사용한다.
커피가 스며든 종이는 오래된 한지와 고문서를 연상시키는 색감과 질감을 품고, 그 위에 동양화 안료와 염색 잉크, 커피 염색을 더해 깊은 시간의 흔적을 쌓는다. 청자와 백자의 은은한 질감은 투명 바니시를 덧입혀 표현했다.
전시장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상징과 조선 민화의 길상 도상,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그러나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민화를 오늘의 일기처럼 사용한다.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면 화면 아래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편지를 적고, 계절의 풍경과 그날의 감정을 함께 담아낸다.
작가는 "아름다운 조각보가 그러했듯 나의 그림이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되기를 바라며, 민화의 이야기로 즐거움과 행복을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커피 향이 스며든 여과지 위에 기억을 한 겹씩 포개 올린 작품들은 전통이 과거의 유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이어지는 풍경임을 보여준다. 전시는 2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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