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내 동생아…" 5·18묘비 앞 주저앉은 유족들

기사등록 2026/05/17 11:32:37 최종수정 2026/05/17 11:36:24

"눈감기 전 5월 정신 헌법 수록, 남은 여생 소원"

[광주=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들불야학 교사로 활동한 고(故)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76) 여사가 멍하니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6.05.17. lhh@newsis.com
[광주=뉴시스]이현행 기자 = "아들, 하늘에서 만나는 날 '네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꼭 말해줄께"

5·18 민주화운동 46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수십 년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씻어내지 못한 희고 검은 소복 차림의 5·18 어머니들의 흐느낌이 이어졌다.

가족을 만날 생각에 곱디곱게 단장한 어머니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떼며 일 년 만에 찾는 가족들의 묘비로 향했다.

묘소 앞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힘없이 털썩 주저앉거나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하얀 장갑으로 묘비를 연신 어루만지거나 평소 고인이 좋아했던 먹거리를 내어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들불야학 교사로 활동한 고(故)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76) 여사는 멍하니 동생의 묘비만 바라봤다.

박 열사는 1980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5·18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선 인물이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범시민 성격의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주도했다. 당시 군중 앞에서 그가 울부짖듯 낭독한 '비상계엄 해제' 시국선언문은 광주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 계엄군에 맞설 수 있는 결정적인 단초이자 원동력이었다.

5·18 이후 신군부의 표적이 돼 수배 생활을 하다가 2년 뒤인 1982년 체포된 그는 40일간 독방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숨졌다.

박 여사는 "내가 죽기 전에 관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심을 신청할 것이다. 꼭 하늘에서 관현이를 만난다면 '넌 죄인이 아니야. 넌 열사야'라고 말할 수 있는 누나가 될 것"이라며 "헌법전문 수록을 위해서도 혼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고 김영두 열사의 누나 김영화(74) 여사도 동생의 묘소를 찾았다.

[광주=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하루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김영두 열사의 누나 김영화(74) 여사가 묘비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6.05.17. lhh@newsis.com
김 여사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탄산음료와 초코빵을 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5·18 당시 교련복을 입고 시민군에 합류했던 동생은 차를 타고 나주로 향하던 도중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고향이 전남 영암이었던 김 열사는 당시 함께 탑승해 있던 한 목사에게 "영…영…영암"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숨을 거뒀다.

김 여사는 "5·18 민주화운동은 특정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정체성 그 자체"라며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생을 마감한 동생을 위해서라도 5·18 정신이 헌법전문에 수록되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고 권호영 열사의 어머니 이근례(86) 여사는 교복 차림인 큰아들의 영정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권 열사는 1980년 5월26일 둘째동생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 몰래 홀연히 집을 나섰다.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미뤄온 권 열사는 장남으로서 동생 4명의 뒷바라지를 하며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초 학원가 내 정권 타도 시위 움직임이 격해져 학원을 쉬던 권 열사는 계엄군의 금남로 집단 발포가 있었던 5월21일 둘째 동생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째를 찾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5월26일 밖으로 나선 권 열사는 금남로에서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된 뒤 영영 사라졌다.

이 여사 등 가족들은 그해 8월 가까스로 둘째를 찾았으나, 권 열사는 5·18이 지나고 22년 만인 2002년에서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무명열사 묘소에서 백골의 모습으로 어머니와 재회했다.

이 여사는 "내년부터는 묘지에 찾아올 수나 있을랑가 모르겠어. 방금 했던 말도 자꾸 잊어버리는데 내 자식 얼굴은 생생해"라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거여. 최근엔 (헌법전문 수록을 위해) 서울도 다녀왔어. 민주화 정신을 담은 헌법전문 수록은 반드시 돼야 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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