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판매서 취향 큐레이션 이어 공동체 거점으로
"취향 같은 사람 만나고 정보 공유하며 넓어져"
"다양한 프로그램, 새로운 독자 만나려는 시도"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서울의 한 독립책방에서는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시를 낭독한다. 또 다른 책방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삶을 글로 기록하고, 클래식 음악을 함께 듣거나 영화 상영회를 연다. 인공지능(AI)으로 자서전을 써보는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도 있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동네 책방이 이제는 취향과 관계를 공유하는 '생활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책 판매에 머물지 않고 낭독회, 글쓰기 모임, 음악 감상회, 독립출판 제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모습이다.
책 '동네책방 생존 탐구'를 펴낸 뒤 약 10년간 동네책방의 변화를 지켜본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최근 출간한 신간 '동네책방 지속 탐구'에서 이를 '3세대 서점'이라고 표현한다.
1990년대의 1세대 서점이 책을 진열·판매하는 공간이었다면, 2010년대의 2세대 서점은 특정 취향과 분야를 큐레이션하는 공간이었다. 한 평론가는 최근의 3세대 서점에 대해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책방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있다. 시 낭독회와 필사 모임은 물론 영화 상영, 철학 입문 강좌, 음악 감상회, 자서전 쓰기, 독립출판 제작 프로그램까지 운영된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취향과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기능이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진행하는 '2026 문화요일수요일×심야책방' 사업 역시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서울 15곳을 비롯해 전국 지역서점 70곳에서 심야 독서 모임과 북토크, 낭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단순히 책을 소비하기보다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책방을 찾는다고 말한다.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미애씨는 "친구를 따라 어떤 시인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너무 재밌었다"며 "그때부터 시를 읽으며 강연회 등을 와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이어 "독립책방에는 강연이 많아 이런 정보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알려주고 시간이 맞으면 같이 가서 듣고 있다"며 "거기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또 알게 되고 이야기하면서 정보공유도 하고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갔다가 특별판 책이나 굿즈를 구매하는 식으로, 취향 소비 안에 책방 경험 자체가 포함되기도 한다.
서점 운영자들 역시 문화 프로그램을 새로운 독자와 만나는 접점으로 보고 있다.
한 독립책방 대표는 "지원사업 여부와 관계없이 평소에도 유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결국은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책방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한 평론가는 책방의 미래를 지역 커뮤니티에서 찾는다. 그는 "혼자 읽던 책을 함께 읽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책방의 공공적 역할은 결국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 문제와 닿아 있다.
한 평론가는 "책방이야말로 책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보루다.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가장 먼저 독자들이 책으로부터 떠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사례에 주목한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사이 '바이 로컬(buy local)' 운동과 지역 공동체 문화가 결국 책방을 지속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여기 모인 이들도 좋아한다. 지친 마음은 쉴 자리를 얻는다. 그곳에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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