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가르침 오래 기억하겠습니다"…故이선재 교장의 마지막 스승의날[현장]

기사등록 2026/05/15 13:03:59

스승의날 닷새 앞둔 10일 새벽 별세…향년 90세

"못 배운 여성의 한을 풀기 위해 평생 바치신 분"

학교는 존폐 기로에…"문 닫지 않고 계속됐으면"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15일 오전 김신일 전 부총리가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열린 고(故) 이선재 교장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2026.05.15. spicy@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 "교장 선생님, 이제는 학교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따뜻한 가르침과 보내주신 사랑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스승의날인 15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 평소라면 '스승의 은혜' 노래와 카네이션으로 가득 찼을 교정에는 침묵과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내려앉았다.

이날 열린 '여성 만학도의 스승' 고(故) 이선재 교장의 추모식은 그의 마지막 스승의날을 기리는 작별 인사가 됐다. 고인은 스승의날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0세.

일성여중고 졸업생과 재학생 150여명은 일제히 검은 옷을 맞춰 입고 자리를 지켰다. 행사 시작 전부터 학생들은 서로의 손을 토닥이며 위로를 건넸고, 영정 사진 속 환하게 웃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에서 누구 하나 눈을 떼지 못했다.

추모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김신일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정찬남 한국문해교육협회 전 부회장 등이 참석해 고인의 교육 정신을 기렸다.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15일 오전 김신일 전 부총리가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열린 고(故) 이선재 교장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2026.05.15. spicy@newsis.com

김 전 부총리는 추모사에서 "선생님은 배우지 못한 여성들과 성인 학습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교육자 중의 교육자였다"며 "교육을 통해 받은 은혜를 사회에 되돌려주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친 분"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20년 넘게 고인의 곁을 지킨 김상현 교감은 추모사를 읽던 중 여러 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도 학교 소식을 물으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하자 장내는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김 교감은 떨리는 목소리로 "교장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배움의 등불을 이어가겠다"며 "학생들이 끝까지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학교를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진 추모사에서도 고인을 향한 그리움은 계속됐다. 총동문회장 박서정씨는 "글자를 몰라 버스도 제대로 타지 못했던 분들이 졸업장을 품에 안고 울던 순간이 생각난다"며 "교장 선생님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피어나게 했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고연희 학생회장도 "오늘은 스승의 날이라 '스승의 은혜'를 불러야 하는 날인데 꿈에도 생각 못한 추모의 글을 올리게 됐다"며 "늦은 배움에도 결코 늦음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참 스승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열린 고(故) 이선재 교장 추모식에 참석한 학생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6.05.15. spicy@newsis.com

고인은 1963년 일성고등공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중고 등을 설립하며 평생 배움의 기회를 놓친 여성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가 닦아놓은 길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은 여성과 노동자 등 만학도는 6만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학교는 현재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 2007년 평생교육법 개정으로 법인 전환이 필수적인 상황이나, 설립자 중심의 운영 구조상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지가 어려운 탓이다. 이에 올해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는 2028년 2월 이후 학교 문을 닫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한결같이 "학교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추모식 내내 눈시울이 붉어져 있던 재학생 김복자(71)씨는 "교장 선생님은 사랑 자체였다. 못 배운 여성들의 한을 풀어주신 분"이라며 "언젠가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살았는데 여기 와서 그 한을 풀었다. 학교 문이 닫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열린 고(故) 이선재 교장 추모식에서 학생들이 묵념하고 있다. 2026.05.15. spicy@newsis.com

졸업생 우옥식(74)씨도 "학교는 우리 엄마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교장 선생님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학교는 계속 운영되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추모식은 홍금자 시인의 추모시 낭독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스승의 은혜' 제창에 이어 헌화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추모식의 마지막 순간, 학생들은 생전 고인에게 자주 건넸던 인사를 함께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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