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서 V&A 유물 흔든 갈라 포라스-김 “보존은 또 다른 손실”

기사등록 2026/05/07 05:59:12 최종수정 2026/05/07 07:05:13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초청

응용예술관서 ‘손실과 보존’ 탐구한 신작 공개

“유물을 본다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일”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다소 어색해한 그는 취재진의 휴대폰 카메라 세례에 수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과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된 이번 전시에서 그는 움직이는 모빌과 그림자 이미지를 결합한 신작등을 선보이며, 사라지는 존재와 기록의 문제를 탐구했다. 2026.05.06. hyun@newsis.com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유물은 원래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박물관에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에서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은 그 역설을 다시 드러냈다.

어두운 전시장 안,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의 마리오네트 인형들은 그림자를 배경으로 천장 아래 미세하게 흔들렸다.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응용예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갈라 포라스-김은 “이번 작업의 핵심은 기관이 어떻게 손실(loss)을 정의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며 “손실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과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작가는 V&A 소장품과 보존 시스템을 연구하며 유물이 어떻게 ‘역사적 대상’으로 규정되고 관리되는지를 추적했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보존 과학에서 말하는 ‘손상의 10가지 요인(decay agents)’이었다. 물과 태양광, 열, 지진 같은 물리적 손상뿐 아니라 ‘해체(dissociation)’라는 개념이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해체’는 사물이 가진 메타데이터(metadata)를 잃어버리는 상태”라며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대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유물은 박물관 컬렉션이 되기 전 원래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며 “기관이 그것을 오직 역사적 유물로만 규정하는 순간, 이전 기능과 의미는 오히려 손상된다”고 말했다.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에 선보인 커튼 설치작품. 이번 작업은 1950년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 직원의 패브릭 절도 사건에서 출발했으며, 훼손과 보존, 유물의 원래 기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26.05.06.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 한쪽의 거대한 커튼 설치는 실제 1950년대 V&A 직원의 절도 사건에서 출발했다. 당시 직원은 박물관 소장 패브릭을 훔쳐 자신의 집 커튼으로 사용했다.

갈라 포라스-김은 오히려 그 사건에서 유물의 “원래 기능”을 발견했다.

“그 패브릭은 원래 커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죠. 훔치고 잘라 커튼으로 만든 행위는 어쩌면 원래 운명으로 되돌린 과정일 수도 있어요.”

잘게 찢어진 패브릭 조각들은 이후 보존 전문가의 보강(backing) 작업을 거치며 새로운 흔적과 패턴을 갖게 됐고, 그는 그 구조를 다시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에 선보인 신작 그림자 작품. 2026.05.06.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다른 공간에는 그림자와 함께 흔들리는 마리오네트 모빌 작업이 설치됐다. 움직임보다 그림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형은 원래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움직이면 손상됩니다. 그 역설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미세한 움직임을 그림자를 통해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V&A에는 인형의 움직임을 점검하고 리허설하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갈라 포라스-김이 2층 바닥을 직접 뛰어 움직임을 만들자 천장 아래 매달린 마리오네트들이 크게 흔들렸고, 벽면에 드리운 그림자 그림 역시 함께 출렁이며 전시장에 묘한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 ‘인 마이너 키즈(In Minor Keys·단조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잠시 웃으며 말을 골랐다.

“달콤쌉싸름한 감정이 있어요.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가장 큽니다.”

올해 본전시는 지난해 타계한 카메룬 출신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가 생전 구상한 프로젝트다.

갈라 포라스-김은 “초청 작가 모두가 ‘코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전시를 준비했다”며 “이번 전시는 화려하거나 직접적이지 않지만 우리가 시간을 들여 바라봐야 하는 기저의 과정(underlying processes)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유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며 “언젠가 내 작업 역시 같은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면 미래의 보존 방식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계 작가’라는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업은 박물관이라는 제도와 보존 시스템 자체를 정면으로 질문한다.

그는 “제 작업 세계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기관의 본질적인 고민과 깊이 맞닿아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기관과 사람이 함께 시간을 통과해온 과정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관람객들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에서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의 설치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훼손된 패브릭 조각과 보존 흔적을 재구성한 이번 작업은 유물의 손실과 복원, 박물관 보존 체계의 역설을 탐구한다. 2026.05.06.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이 아르세날레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에서 개인전을 연다. 2026.05.06.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1984년생인 갈라 포라스-김은 콜롬비아·한국·미국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유물과 오브제가 제도적 맥락과 분류 체계 속에서 어떻게 수집·인식·해석되는지를 탐구해왔으며, 문화기관의 보존 관행과 박물관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작업에 담아왔다.

드로잉·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연적 요소와 문화 오브제의 존재론적 복합성을 탐구하며, 박물관적 관습과 보존의 개념에 균열을 내는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이며,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파울러 미술관, MUAC 등에서 전시했다.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내 응용예술관(Applied Arts Pavilion) 일대 전경. 붉은 벽돌 건축과 산업 유산 공간을 활용한 아르세날레는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와 특별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핵심 장소 중 하나다. 2026.05.06.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는 지난해 타계한 카메룬 출신 큐레이터 코요 쿠오가 생전 구상한 ‘인 마이너 키즈(In Minor Keys·단조로)’를 주제로 열린다. 본전시에는 111명(팀)의 작가가 참여하며, 한국 작가로는 갈라 포라스-김을 비롯해 제주에서 활동하는 요이(Yo-E Ryou), 한국계 미국 작가 마이클 주가 초청됐다.

1895년 시작된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로 꼽힌다. 올해는 99개 국가관과 31개 공식 병행전시가 베네치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공식 개막은 9일이며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