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는 생을 등지는 '전조'…SNS '자해계'에 빠져든 아이들[미래세대가 병들고 있다②]

기사등록 2026/05/02 07:00:00

입시 지옥에 부모 태도 변화로 자해 경험

감정 공유·공감…동조심리에 행동 강화도

"더 깊은 우울에 전염…극단적 선택까지"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이다솜 신유림 기자 = <1부:자살에 노출된 초중고생>

대학교 2학년인 이모(21)씨의 왼쪽 팔목에는 고등학교 시절의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입시 지옥이라 불리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그는 커터칼을 들었다.

시작은 성적 압박이었다. 일반고에 진학해 무난한 성적을 유지하던 이씨였지만, 1학년 중간고사 이후 부모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 성적으로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날 선 압박이 이어졌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심리적 고립감은 커졌다.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고 찾은 집에서도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자 그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강도가 센 행동은 아니었다. 손톱으로 몸을 긁는 행동에서 시작된 자해는 점차 강도가 높아졌고, 결국 커터칼을 이용한 자해로 이어졌다.

이씨에게 자해는 고통을 표현하는 동시에 감정을 멈추는 장치였다. 그는 "자해를 하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들었다"며 "그 순간 만큼은 생각이 멈추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기숙사 사감교사가 자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모에게 전달됐고 이후 상담과 치료로 이어졌다. 이씨는 "상담을 받으면서 '나 혼자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자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자해는 극단적 선택 이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위험 신호로 꼽힌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X(엑스·옛 트위터)를 중심으로 이른바 '자해계'가 확산하며 자해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자해계’는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자해 흔적 사진이나 당시 감정, 충동을 기록하고 이를 서로 공유하는 계정을 의미한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서로의 행동을 확인하고 반응을 주고받는 일종의 커뮤니티 형태를 띠고 있다.

◆"스스로 싫어 자해"…온라인 '자해 공동체'로 숨어든 아이들

고등학생 김채민(17)양은 엑스를 통해 자해를 처음 접한 사례다. 김양은 "예쁘지 않은 데다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며 "SNS에서 자해 사진을 올린다는 뉴스를 보고 처음 알게 됐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해는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김양은 "자해를 하는 순간에는 감정을 풀어내는 느낌이 컸고 처음에는 호기심도 있었다"고 했다. 자해계는 자해 행위의 강도를 높이는 촉매제가 됐다. 특히 자해 사진과 감정을 공유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강한 유인으로 작용했다.

김양은 "현실에서는 자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SNS에서는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 있어서 '나만 이상한 게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반응을 해주고 공감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후였다. 그는 "처음에는 자해 강도가 세지 않았는데 SNS에서 더 강한 자해를 보면서 점점 무뎌졌고 더 강하게 하게 된 것 같다"며 "우울한 글만 계속 보다 보니 심리적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등학생 A양도 부모와의 갈등 이후 자해를 시작했고 SNS에서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위안을 얻었다. A양은 "힘든 감정을 해소하고 버티기 위한 방법이었다"며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그가 자해계에 빠져든 이유는 현실에서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을 온라인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뉴시스]x(엑스·옛 트위터)에 게시된 자해계 관련 게시글들.(출처=엑스 캡쳐) 2026.04.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자해 모방 및 학습 효과…자살 고위험군 전이 우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감 구조 역시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했다. 자해 행동을 이해받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를 중단해야 할 필요성 자체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자해계가 표면적으로는 공감 공동체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해 행동을 학습하고 강화하는 위험한 공간이라고 경고한다. 반복 노출을 통해 자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낮아지고 또래의 반응을 통해 행동이 강화되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운경 단국대 심리학과 연구교수는 "자해계에 빠진 학생들은 대부분 상황이 악화되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며 "변별력이 낮은 상태에서 서로 자해하는 모습을 공유하면 정서적으로 전염돼 더 깊은 우울과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자해계에서는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식의 왜곡된 과시가 나타날 수 있다"이라며 "청소년은 또래 영향에 취약한 시기인 만큼, 동조 심리로 인해 자해가 확산되고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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