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없는 수박에서 K-사이언스로"…내년 R&D 투자, '한국다움'에 꽂혔다

기사등록 2026/03/12 16:00:00 최종수정 2026/03/12 16:46:26

과기정통부, 역사·문화·환경 결합한 '우리만의 과학' 브랜드 구축 추진

인문-이공계 칸막이 허물고 국민 체감 성과 가시화…'스토리텔링'도 강화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정부가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투자의 핵심 키워드로 'K-사이언스(K-Science)'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존 R&D 투자의 중점 방향이었던 반도체·이차전지 등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 더해 R&D 외연을 우리 고유의 역사와 문화, 지질학적 특성과 결합한 이른바 '한국형 과학'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80회 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7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을 심의·의결했다.

◆"왜 제인 구달 같은 '한 분야 특화' 과학자 없나"…한국인이 주도하는 과학 개척 나서

이번 투자방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K-사이언스의 추진이다. 이는 기존 R&D가 전략기술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만 치중해 일반 국민의 공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민생경제 성장, 특히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R&D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박인규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세계적인 침팬지 전문가인 제인 구달 박사처럼 한 평생 한 분야를 연구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가 왜 한국에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며 정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씨 없는 수박'으로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우장춘 박사를 K-사이언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이라고 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다소 오해가 섞인 인식이다.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보급한 인물인 것은 맞으나, 더 나아가 현재도 우리나라에서 즐겨먹는 다양한 농산물의 품종을 개발·개량해낸 인물이다. 학계에서는 사실상 한국의 식탁을 완전히 바꿔놓은 농생물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박 본부장은 "우장춘 박사의 사례처럼 한국인이 개척하고 주도하는 분야, 우리가 하지 않으면 세계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을 분야를 발굴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K-사이언스는 크게 ▲한국인 과학자가 글로벌 연구의 주류를 형성하며 주도하는 분야인 'K-리드(Lead)' ▲외국보다 앞서 나가며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영역인 'K-이니시에이션(Initiation)' ▲우리의 생존과 혁신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한국 특화 과학인 'K-아이덴티티(Identity)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추진된다.
[서울=뉴시스]박인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 제공)

◆역사·문화와 손잡는 과학…인문-이공계 칸막이 허물고 과학에도 '스토리텔링' 입힌다

과기정통부는 K-사이언스를 한국 고유의 역사·문화·환경 등과 결합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과학기술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한국인 과학자의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적 기록이나 지질학적 자산을 첨단 과학기술과 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왕조실록이다. 1600년대 초신성 폭발 연구 과정에서 서양의 기록만으로는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지 못했으나, 우리 조상들이 남긴 조선왕조실록의 정밀한 기록을 통해 날짜를 특정할 수 있었던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만의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규명하는 연구에 예산이 투입된다.

정부는 이처럼 K-사이언스를 통해 과학기술에 '문화'라는 스토리텔링을 더해나갈 계획이다. 단순히 연구실 안에서 끝나는 과학이 아니라 국민이 바로 체감하면서 흥미·재미를 느끼고,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지질환경이나 생태계 동식물 등 우리나라 과학자가 아니면 외국인이 관심을 두기 어려운 분야, 혹은 고고학 등 인문학적 영역과 이공계 기술이 결합한 프로젝트도 활성화된다.

이에 대해 박 본부장은 "여태껏 인문학 예산과 과학기술 예산 사이의 칸막이 때문에 투자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R&D를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기획 단계부터 결과 도출까지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을 도입할 방침이다. 또 영국의 BBC처럼 과학적 발견 과정을 흥미롭게 보도하거나 이벤트를 만들어 교육과 홍보가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도 검토 중이다.

K-사이언스 외에도 2027년 R&D 투자는 인프라 구축을 넘어 '실증과 성과'에 초점을 뒀다.

AI 분야는 기술 개발을 넘어 전 산업에 적용하는 'AX(AI 전환) 거점' 구축에 속도를 내고, 바이오 분야는 AI를 활용해 임상까지의 전주기 단계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데 집중한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과 연계해 대규모 실증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박 본부장은 "이제는 R&D 투자가 AI 3대 강국 도약,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창업 코리아 실현, 지역 경제 활성화 등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결실을 맺을 때"라며 "정부R&D 사업을 수행하는 30여개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민·관의 역량을 총 결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논의된 내년도 R&D 투자방향은 기획예산처 및 관계 부처에 통보돼 오는 9월까지 2027년도 정부 R&D 예산 배분·조정 및 편성을 위한 기본 지침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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