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크리스티·소더비·필립스 등 이른바 ‘빅3’ 경매사의 정체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미술 판매가 여전히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럭셔리 부문이 빠르게 성장하며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조짐이다.
최근 영국 미술시장 분석기관 아트택틱(ArtTactic)에 따르면 빅3 경매사의 파인아트 매출은 2022년 108억 달러에서 지난해 70억4000만 달러로 35% 감소했다. 반면 2025년 공개 경매 기준 럭셔리 매출은 18억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특히 클래식카가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
현재 소더비 매출의 약 3분의 1은 럭셔리 부문에서 발생하며, 이는 2019년 대비 세 배 수준이다. 크리스티 역시 핸드백·시계·보석·자동차 등 럭셔리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중동을 비롯한 신규 부유층 시장에서 명품 수요가 급증한 것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예일대에서 미술경영을 강의하는 매그너스 레쉬는 “경매사가 미술 거래소에서 종합 럭셔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술뿐 아니라 자동차, 보석, 부동산, 고급 소비재를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 모델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크리스티 전 최고경영자(CEO) 기욤 세루티는 “럭셔리 판매 성장세가 경매사의 정체성을 위협하지는 않는다”며 “다각화는 모델을 강화할 뿐 재정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경매라는 플랫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국내 경매사도 ‘럭셔리 실험’…아직은 미술 중심
국내 주요 경매사들도 이미 명품 경매를 시도해왔다. 서울옥션의 온라인 플랫폼 ‘서울옥션 블루’에서는 에르메스 버킨백, 롤렉스 시계, 다이아몬드 장신구 등이 출품되며 명품 카테고리를 운영해왔다. K옥션 역시 일부 세션에서 시계·보석·패션 아이템을 선보이며 수요를 시험한 바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미술품 경매가 매출의 중심이다. 명품 부문이 독립적 수익 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외 경매사처럼 럭셔리 매출이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한 단계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럭셔리 부문이 신규 고객 유입 창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실제로 크리스티에서는 2025년 신규 고객의 38%가 미술이 아닌 럭셔리 부문에서 첫 구매를 시작했다.
경매사가 미술 중심의 문화 기관으로 남을지, 종합 럭셔리 플랫폼으로 확장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미술은 줄고 명품은 늘어나는’ 흐름이 지속될 경우, 경매사의 수익 구조와 브랜드 정체성은 장기적으로 재편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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