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센터 개인전 ‘Face’ 조각·회화 68점
1970년대부터 근작까지 얼굴 연작 총망라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조각이란 모르는 것이다.”
조각가 최종태(94)가 한평생 붙들어온 이 문장은,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그의 작업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Face’는 최종태의 70여 년 화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온 ‘얼굴’ 연작에 집중한 전시다.
3월 29일까지 펼치는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조각 49점과 회화 19점 등 총 68점이 출품됐다.
얼굴만을 단독으로 다루는 전시는 2001년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이후 20여 년 만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변주돼 온 ‘얼굴’의 조형적 변화와 사유의 궤적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방구석에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 있었다. … 결대로 깎았다. 결 간 대로 손 가는 대로 정신없이 한두 시간은 했을 것 같다. 이웃에 주막이 있어서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고 「이제 김종영으로부터 벗어났다」하고 쾌재를 불렀다. 얼만가 후에 버려진 나무토막이 눈에 들어와서 깎기 시작했다. 둘 다 즉흥적인 일이 돼서 전에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다. 얼굴이되 추상 성향이 강한 형태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 것이다 하는 사전 준비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즉흥으로 단시간에 해결된 것이다. 더 손볼 데가 없었다.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조각이 만들어진 시초의 일이었다. 준비 없이 단숨에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끌 가는 대로 그리하여 시작과 끝을 내가 모르는 것이었다. 세계 미술사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스승의 품을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웠다. 1968년에 생긴 일이었다."– 최종태, 「조각이란 모르는 것이다 – 얼굴 조각에 얽힌 사연–
최종태에게 얼굴은 인체의 일부가 아니다. 그는 얼굴을 하나의 완결된 조형으로 다뤄왔다. 작업 초기의 얼굴은 단순하고 납작한 형태로 시작됐다. 스승 김종영의 조형 언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흥적으로 나무를 깎던 1968년의 경험은 이후 그의 조각 세계를 결정지은 출발점이 됐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김종영(1915~1982)에게 사사하며 조각의 길로 들어선 최종태는 졸업 이후 줄곧 스승과 구별되는 조형 언어를 찾고자 했다. 그는 1968년 신촌 작업실에서 즉흥적으로 깎은 두 점의 얼굴 조각을 통해 김종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회고한다. ‘얼굴이되 추상 성향이 강한 형태’,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 조각’의 등장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얼굴은 최종태가 조형 실험을 거듭할 때마다 되돌아가는 핵심 거점이 됐다.
198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도끼형 얼굴’은 최종태 조형의 전환점이다. 가늘게 떨어지는 목 위로 옆으로 길게 뻗은 얼굴은 날카로운 도구를 연상시킨다. 대부분 브론즈로 제작된 이 시기의 얼굴은 작가가 직접 정치적 의도를 전제하지 않았음에도, 군사정권과 사회적 억압의 시간을 통과하며 축적된 감정이 자연스럽게 응결된 형상으로 읽힌다. 얼굴은 표정을 지우는 대신, 시대의 압력을 구조로 드러낸다.
1990년대 이후 얼굴은 점차 변주된다. 각은 유지되지만 공격성은 누그러지고, 고개를 숙인 듯한 형상이 등장한다. 2005년 이후에는 채색 얼굴 조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원색으로 칠해진 얼굴과 붓으로 그린 이목구비는 추상과 구상을 다시 연결하며 새로운 국면을 연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최종태 얼굴 조각을 관통하는 주제는 일관된다. ‘인간됨’이다. 그는 특정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는다. 심상 속에서 길어 올린 얼굴을 통해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그리고 싶다고 말해왔다. 조형미보다 정신미에 기울어온 그의 태도는 얼굴이라는 형식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인간의 내면에 선성(善性)이 존재한다고 믿는 최종태는 자신의 조각이 더 높은 단계의 선성을 향하기를 희망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망, 인간에 대한 연민, 구도자적인 삶의 태도는 그의 얼굴 조각 전반에 깊이 스며 있다.
최종태의 얼굴은 점점 덜 날카로워지지만, 더 인간적이 된다. 저항의 얼굴에서 견딤의 얼굴로, 분출의 형상에서 사유의 구조로 이동해온 시간이다. 이번 전시는 그 긴 여정을 따라가며 묻는다. 얼굴은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조형은 어디까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를.
한편 최종태는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로, 우성김종영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영미술관 관장, 이동훈미술상 운영위원장, 이동훈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2024년 8월에는 유럽 출판사 스키라(Skira)에서 화집 『CHOI JONG TAE: Eternity』를 출간했다. 그의 얼굴 조각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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