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데뷔 음반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로 호평
'넓은 집' 등으로 보편적 호소력 발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 지난해 4월 정규('심장의 펌핑은 고문질')로 데뷔한 우희준은 두 장의 EP('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밑을 찔러서 따갑다!')를 더 내고 반짝반짝 빛났지만, 성취나 영광 대신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가 그러했듯 실패와 주변부의 자리를 자처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그 태도가 패배주의가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자기 인식에서 비롯된 윤리적 결단이라는 것이다.
우희준은 자신의 주특기인 베이스 기타가 그러하듯, 화려한 선율이 뛰어놀 수 있도록 바닥을 다지는 '노동'이라 칭한다. 또한 '수치심'을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게 만드는 '자긍심'의 재료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그녀의 음악이 단순한 소리의 배열이 아니라, 고통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어떤 단단한 건축물임을 직감한다.
자신의 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수치심이라는 '정직한 자재'를 사용해 한 번에 쏟아내는(One-take) 방식으로 지어 올린 집. 그 집은 화려하지 않으나 비바람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 스스로를 '모르는 사람'이라 칭하며 끊임없이 배우려는 한 예술가의 진실한 건축 도면을 펼쳐 보인다. 이토록 사려 깊은 '베이스(Bass)' 위라면, 우리는 안심하고 각자의 삶을 연주해도 좋다.
신샘이 이어스(ears) 에디터(대중음악 평론가)는 우희준의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에 대해 "카메라 렌즈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아트웍처럼 그의 펄떡거리는 외침이 전해져 타인의 심장을 박동하게 만든다. 심장의 펌핑질이 때론 죽고 싶을 만큼 괴롭게 만들 때도 있지만 살아있음을 깨닫게도 하는 것처럼 삶의 고단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가사와 연주가 우심실과 좌심실의 협업처럼 함께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들었다.
다음은 최근 서울 성동수에서 만난 우희준과 나눈 일문일답.
-작년 한 해는 정말 '우희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앨범을 내면서 이런 즉각적인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하하. 아니요, 전혀요. 저는 제 이야기가 이렇게 빠르게 청자에게 닿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앨범을 만들면서 제가 좋아하던 작가나 예술가들은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책이 출간되거나, 반세기 후에 재조명받는 분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저 역시 어렴풋하게 '내 이야기는 아주 느리겠구나'하는,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닿은 것 같아서 사실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사후의 작가'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을 염두에 두셨나요?
"저는 시몬 베유라는 철학가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분은 살아 생전 교수직을 얻거나 철학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는 삶을 산 게 아니라, 치열하게 경험하며 쓴 글들이 사후에 묶여 나와 추앙받은 케이스에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조에 부스케(Joë Bousquet),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같은 분들 전부 생애에는 실패자, 혹은 주변부의 인물로 취급된 사람들이에요. 그런 분들의 삶과 글을 보며 이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 음악도 그런 '느린 이야기'의 운명을 가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넓은 집' 같은 곡은 세대를 불문하고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닿은 보편적인 호소력이 놀라워요.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해 주신다는 건 제 작품이 '입체적'이라는 뜻인 것 같아 가장 기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분법적인 갈등이 만연해 있잖아요. 그런데 입체적인 작품 앞에서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동시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겪는 갈등의 허구성'을 간접적이지만 가장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제일 원하던 성취였는데, 그 마음이 닿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그런 깊이 있는 시각을 갖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나름의 시스템이나 루틴이 있나요?
"앨범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필사를 열심히 했어요. 나름의 예술관 같은 것을 가지고자 애썼고요. 앞서 말씀드린 시몬 베유를 비롯해서 김혜순 시인, 이수명 시인의 책들을 필사했는데요. 특히 시인분들의 '시론(詩論)'을 읽으며 예술관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앨범을 만들기로 마음 먹은 시점부터는 칸트부터 시작해서 수전 손택이나 랑시에르, 아감벤 같은 미학 서적도 읽으려 노력했고요. 그런 것들이 자양분이 돼 가사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셨잖아요. 작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라고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기보다는, '구사력이 생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제 안에 그렇게 확고한 정신 같은 건 없거든요.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연주하고 편곡하며 의견을 덧대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때는 작곡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제 안에 '구사력'이 없다는 걸 실감했으니까요. 그렇게 살아가다 언어로 확증하지 못하는 제 부족함을 체감하며 책을 잡게 됐습니다. 음악만 해왔으니 다른 경험도 부지런히 해보려 했고요. 그러다 문득 돌이켜보니 그동안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을 때에도 그 안에 담긴 '무구한 정신'이 느껴질 때에만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도 그런 정신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면서 성실함과 선함을 진심으로 원하게 되고, 음악도 더 사랑하게 되고, 부족함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곡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앨범 전반에 '수치심'이라는 정서가 흐르는데, 이것이 '자긍심'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건 자신의 부족한 면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니, 역설적으로 좋은 일이잖아요. 직시해야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주하는 수치심과 고통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요즘 읽고 있는 라투르 이론에서는 이를 과거 비관주의 다음의 파국주의라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성경이나 시몬 베유도 다 말하는 내용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중에 닉네임이 '몰름보'인 분이 계세요.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나,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선언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분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박식한 분이시거든요. 그런데도 스스로를 '평생 모르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계속 배우시려는 태도에서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안다'고 자만하지 않고, 모른다는 사실을 안고 살아가는 태도. 저도 그런 수치심, 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로부터 오는 자긍심을 안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릴 때 힙합을 좋아했고 드럼으로 음악을 시작했다고요.
"어릴 때 어머니가 클래식 음악을 강요하셔서, 청개구리 심보로 정반대인 힙합에 빠졌습니다. 하하. 당시 '힙합엘이' 같은 사이트에서 인터뷰 번역을 읽고, 지미 팰런 쇼에 나온 힙합 명곡 메들리의 곡들을 전부 찾아 들으며 덕질을 했어요. 그러다 프로듀서 제이 딜라(J Dilla)가 '힙합을 하려면 드럼 정도는 쳐야지'라고 말한 걸 보고 드럼을 시작하게 됐죠."
-작업 방식에 있어서 '제한'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고요.
"힙합의 샘플링 문화가 '제한된 환경' 속에서 피어난 예술이잖아요. 저도 이번 앨범을 만들 때 '내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물리적 제한을 뒀습니다. 완성이 결국에는 판단이잖아요. 처음에 '넓은 집' 작업을 할 때, 처음에는 현대의 일반적인 방식대로 베이스와 보컬을 따로따로 끊어서 녹음해 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니 이 곡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전혀 살지 않더라고요. 결국 베이스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가는 '원테이크' 방식으로 녹음했습니다. 들어보시면 음정이나 호흡이 매끄럽게 정리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교해서 들어봤을 때, 그 한 번에 받은 거친 버전이 훨씬 좋더라고요. 스튜디오의 정돈된 소리가 아니라, 제 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주는 답답한 공기감, 그 소리에 담긴 정서가 곡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앨범과 곡의 경우에는 그 제약이 오히려 곡의 정서를 완성하는 요소였다고 생각해요. 또 음악가로 활동하며 계속해서 실감하는 건, 소리에 경향성이 전부 담긴다는 사실이에요. 이처럼 각자의 음악에 깃든 정서에 따라 걸맞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사가 직설적인 듯하면서도 은유적입니다. '자기 검열'의 결과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기존의 록 음악 가사와는 다르게 그렇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그 이유가 록 음악의 주류 화자가 남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성으로 살면 자기 검열이 쉽게 내면화된다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직설적으로 내뱉기보다는 한 번 더 돌려서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엘렌 식수라는 학자의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데, 그 책을 읽다가 '그녀는 말하면 처벌받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있네요. 하하. 제 가사가 스스로 꽤 직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은유적이라고 평하는 걸 보고 '아, 내가 검열적인 사람이 맞구나' 하고 저 자신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되기도 했어요."
-베이시스트로서 여러 장르의 다양한 뮤지션들의 세션을 해오셨습니다. 그런 세션 활동이 현재 싱어송라이터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베이스는 음악의 '큰 그림'과 '구성'을 만드는 악기입니다.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이죠. 그 위에서 다른 악기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요. 비틀스 폴 매카트니나 제임스 제머슨의 베이스 라인을 들어보면, 베이스 하나만으로도 곡의 흐름과 멜로디, 화성의 조화가 다 들립니다. 저도 그런 베이스 연주를 주로 공부해와서인지, 특정한 솔로 라인을 돋보이게 짜기보다는 곡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을 짜고 마침표를 찍는 데에 강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무대 경험과 일찍 사회생활 했기에 많은 도움이 되죠. 도움을 구한 분들도 많고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 분발해야 하는 지점도 많이 마주한 것 같아요. 저와 함께 일해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싶네요. 하하"
-동갑내기 '산만한시선'과의 작업도 흥미로웠습니다. 희준 씨, 산만한시선 모두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 받는 분들이죠. 인연은 어떻게 이어져 작업까지 하게 됐나요?
"제가 작년 4월 17일에 첫 앨범을 냈는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5월께 '산만한 시선' 분들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제 음악을 올려주셨어요.하하. 혼자 알고 있던 선배 뮤지션이 제 음악을 듣고 좋다고 해주시니 너무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같은 신의 신보를 꼼꼼히 체크하고 좋은 음악을 디깅(Digging)한다는 게 참 건강하고 멋진 태도잖아요. 그 마음에 감사해서 인사를 드리다가, 제가 먼저 불쑥 '작업 같이 하자'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데모를 들려드렸는데 좋다고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작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죠. 사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그때 용기 내서 불쑥 말을 걸었던 저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덕분에 좋은 동료를 얻었으니까요.(그때 들려드린 데모가 '남자가 싫어'라서, 더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곡의 의도와 왜 여러분이 필요한지를 주절주절 설명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두 분은 금방 흔쾌히 허락헤주셨어요.)"
-퀴어(Queer)성이나 소수자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 보입니다. 이런 민감한 주제를 노래나 공연으로 옮길 때 특히 신경쓰는 지점이 있나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감히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 '혹시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건 아닐까?'라는 자기 검열에 늘 시달리죠. 그러다 신촌극장에서 배리어 프리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고민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얻게 됐습니다. 보통 배리어 프리를 장애인이나 소수자를 위한 '배려', 혹은 자원의 '소모'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쓴다'고 여기는 거죠. 하지만 막상 해보면 특정 대상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소수자성을 깊이 이해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더니 비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관객에게 훨씬 더 좋은 공연이 되더라고요. 음악가로서도 제가 얼마나 한정된 감각 안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됐고, 그 틀을 벗어나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조금씩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법적인 장애 등급에 속하지 않더라도, 각자만의 신체적·정서적 약점이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컨디션에 따라서도 달라지죠.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구조가 우리를 포함해,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 어떻게 분절시키는지를 배우고 느꼈죠. 그래서 이건 누군가를 시혜적으로 '배려'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어요. ('배려'라는 말 자체가 때로는 관계의 우위를 내포하니까요.) 다만 스스로는 이런 관점이 구조적 차별의 비대칭성을 희석시키는 건 아닐지, 여전히 딜레마 속에 있기도 합니다. 계속 공부해야죠!"
-작년에만 앨범 3장을 연달아 내셨습니다. 마치 동시대의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산울림이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릴리즈 방식을 좋아합니다. 삶의 호흡과 디스코그래피가 같이 가는 것이죠. 곡을 묵혀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곡이 미워지더라고요. 하하. 과거에 대한 회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지금 느끼는 나, 내 삶의 방향을 바로바로 기록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년의 3부작은 제 '성장 일지'라고 봐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작품마다 의도하는 바나 시도가 다르고, 그 다름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 3부작으로 함께 묶이는 점이 속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가사에서 사회학적 시선과 문학적 아름다움이 긴장 관계를 잘 유지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시와 철학은 언어의 양극단에 있다고 생각해요. 시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대체 무슨 얘기일까?' 하고 궁금하게 만들고 매혹시키는 역할을 하고, 철학은 학술적이고 엄밀한 언어로 말합니다. 양극단에 있는 시인과 철학자가 서로 서신을 주고받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아가는것이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때 하기도 했네요. 하하 시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 안에서는 철학의 언어로 엄밀하게 말하는 일, 그런 작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공연 노동자'라고 칭하기도 하십니다.
"예술가들이 '노동'이라는 말을 쓰면 너무 진보적이거나 정치적으로 비칠까 봐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렇기에 그 말이 더 보편적으로 쓰여야 한다고 봅니다. 내 일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나니,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야만 이 일을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의 재정의에 대한 동시대 논쟁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네요.)"
-마지막으로 올해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2월과 4월에 도쿄 공연이 예정돼 있고, 언어 공부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해외 활동도 기회가 되는 만큼 이어가 보려 합니다. 또한 작년 첫 단독 공연을 열었던 4월18일에 맞춰, 올해도 1주년 기념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더 다양하고 많은 분들과 만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동시에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겨서 활동하며 차분히 채워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롭고 재미있는 작업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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