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에 근로자 추정제까지…노사관계 대격변 불가피

기사등록 2026/01/25 09:00:00 최종수정 2026/01/25 09:07:44

노동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하고 근로자 추정제 도입

노무 제공하면 일단 근로자 간주…입증책임은 사용자에 전환

근로자 인정 시 기업 비용·리스크↑…"고용 경직성 심화될 것"

노란봉투법 시행과 맞물려 이중고…노사정갈등 기폭제 되나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지난 2023년 2월 21일 서울시내에서 배달기사들이 음식배달을 하고 있다. 2023.02.21.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최대 870만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직(특고)·플랫폼 종사자·프리랜서 등 '권리 밖 노동자'의 분쟁 발생 시 이들을 일단 근로자로 간주하는 '근로자 추정제' 도입이 추진된다.

올해 3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으로 원·하청 교섭 등 사용자 책임 범위가 넓어지는 상황에서, 근로자성 입증까지 기업 책임으로 전환되는 법안이 예고되면서 노사관계는 물론 노사정 관계 전반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권리 밖 노동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을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5월 1일 노동절 입법을 목표로 제시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대부분 조항은 근로계약을 맺고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임금을 받는 5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이나 플랫폼 경제 성장 등으로 특고·프리랜서 등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근로기준법 등 전통적인 노동관계법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해왔다.

그동안 정부는 개별법 제·개정을 통해 고용·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거나 법률해석 등으로 제도 개선을 해왔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제정해 권리 밖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근로기준법에 근로자 추정제를 추가하기로 했다.

◆노란봉투법 이어 사용자성 넓어지고 입증책임 전환…기업 리스크↑

핵심은 근로자성의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근로자 추정제는 특고·프리랜서 등이 분쟁이 발생했을 때 '타인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했다'는 전제 사실이 확인되면 우선 근로자로 추정되는 구조다.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사업주가 입증해야 한다.

이 제도는 근로기준법상 분쟁뿐 아니라 퇴직급여 체불, 최저임금 위반 등 근로자 개념을 전제로 한 여타 제도에도 적용된다.

문제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 근로자성을 전제로 하는 다수의 노동관계법이 벌칙 조항을 포함한 '규제법'이라는 점이다. 법원이 근로자성을 넓게 인정하는 추세에서 근로자 추정제까지 도입될 경우 기업의 부담과 법적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로자로 인정되면 사업주 의무는 더 강해진다. 고용·산재보험은 물론,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고 최근 들어 강해진 산업안전 책임도 넓게 인정된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으로 원·하청 교섭과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충격이 이미 예고된 상황에서 근로자 추정제까지 도입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좌우 훅(Hook)이 연달아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날 수 있다"며 "노사 분쟁의 범위가 넓어지고 비용·리스크가 중첩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위원회·경영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09.24. yesphoto@newsis.com

박 교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프리랜서나 특고 등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이미 법원은 근로자성을 다투는 소송에서 가급적 인정을 하는 쪽으로 판단하는 추세이고, 노조법상 근로자성도 특고까지 포괄하는 상황이다. 기업 불안이 가중돼 고용 경직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사측이 반증하지 못하면 바로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구조라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사실상 필요가 없다"며 "왜 이중으로 법을 만드는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법이 제·개정되면 사업주 부담이 크게 늘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노동부는 근로자 추정제가 곧바로 근로자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법원이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흐름과 맞물릴 경우 결과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대노총도 비판 가세…"근로기준법 손대지 않으면 한계"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8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자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 김영훈 장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경총)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회장.  2025.12.08. kmx1105@newsis.com

노동계도 비판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사각지대 해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방식으로는 실효성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20일 논평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근로자성 판단과 관련한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는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보완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현재 논의되는 방식은 근로기준법 정의 규정에 근로자성 판단기준과 추정 제도를 명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며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정의 개정 없는 입법을 반대한다"고 보다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특고·플랫폼 노동자는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 노동관서 신고와 노동위 구제 신청, 법원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먼저 제기해야 하고 분쟁 없이는 여전히 근로자가 아니다"라며 "이는 권리 보장이 아니라 또 다른 진입장벽이다. 노동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는 보호는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는 경영계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노동계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법 개정 가능성은 크지 않다.

◆노사정 갈등 기폭제 되나…선거로 속도 조절 가능성도

우선 제도가 도입되면 법적 분쟁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 추정 자체가 분쟁 발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분쟁 증가를 예상하고 제도 시행에 앞서 근로감독관 역량을 보강하겠다고 밝힌 상태지만, 명확한 기준과 판례가 축적되기 전까지는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

대형 로펌에서 인사노무 업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는 "아직 법이 시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효과를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기업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맞다"며 "현 정부 들어 노동관계법에 대한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입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일각에서는 올해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기를 조절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국면에서 노동 이슈가 정치 쟁점화될 경우 여야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입법을 완료하기로 했던 '65세 정년연장' 논의를 사실상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면서 노동계가 반발하는 등 노정갈등 요소도 여전하다.

결국 노란봉투법 시행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 논의 등 찬반이 강하게 갈리는 이슈들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노사 갈등이 노사정 갈등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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