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쓸 법한 푸른 색 선글라스 쓰고 연설
트럼프에 맞서는 "르 매버릭" 이미지 폭발
영국 신문 "마크롱 선글라스 유럽 구할까" 제목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그란란드는 잊어라, 마크롱 선글라스가 다보스를 장악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각) 전투기 조종사가 쓸 법한 푸른색 반사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등장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의 최대 화제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마크롱이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성큼성큼 걸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맞서 누군가가 나서야할 때라는 신호라는 것이었다.
마크롱이 트럼프의 그린란드 점령 야망에 도전한다는 해석, 조 바이든 전 미 대통령이 쓰던 조종사 스타일 선글라스를 착용함으로써 은근한 조롱을 던졌다는 해석 등이 쏟아졌다.
영국 텔레그래프 신문은 “마크롱의 선글라스가 서방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마크롱의 선글라스는 단지 핏줄이 터진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전 세계 신문 1면 장식, 밈 폭발적 확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쓴 마크롱의 사진은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했다.
푸른색을 띤 렌즈는 다보스 무대의 코발트블루 배경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 선글라스 브랜드를 소유한 이탈리아 기업의 주가는 밀라노 증권거래소에서 급등했다.
인터넷에는 밈이 폭발적으로 퍼졌다.
영화 ‘탑 건’의 주제곡이 흐르는 속에서 에어포스원에 탄 트럼프를 추적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전투기 조종사로 마크롱이 묘사되고 1986년 액션 영화 ‘코브라’에서 기관총을 든 실베스터 스탤론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에 가운데 손가락 든 밈도 등장
전문가들은 마크롱의 선글라스가 트럼프에 강경 대응하길 기대하는 유럽 대륙에 뜻밖의 정치적 연극 효과를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쓴 모습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같은 강력한 독재자들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트럼프가 마크롱의 선글라스가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깨달은 듯했다. 지난 21일 “어제 그(마크롱)가 그 아름다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걸 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며 “그를 보니까, 어느 정도는 강하게 보이더라”고 평한 것이다.
◆트럼프도 "강해 보인다"
그날 오후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유럽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위협도 거둬들였다.
마크롱의 선글라스가 이런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글라스가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것은 분명했다.
마크롱의 선글라스는 스위스 인근 프랑스 쥐라 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앙리 쥘리앙이라는 회사 제품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산 직전이던 이 회사는 프랑스 당국이 일자리를 몇 개라도 지키기 위해 중재한 끝에 2023년 이탈리아 안경 기업 아이비전 테크에 인수됐다.
지난 2024년, 마크롱의 보좌관이 마크롱이 100% 프랑스산 선글라스를 사고 싶어 한다고 연락했다.
아이비전은 금을 적층한 프레임과 푸른색 렌즈를 사용한 모델을 골랐다. 가격은 700달러(약 103만 원)가 넘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로부터 마크롱의 눈을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제품이었다.
지난 21일 알리 쥘리앙 웹사이트에 수만 명이 몰리면서 여러 차례 다운됐다. 마크롱이 쓴 선글라스 주문이 쇄도했다.
일부 패션 전문가들은 푸른 렌즈가 요란하고 촌스럽다고 지적하지만 마크롱에게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의견도 있다.
그라시아 벤투스 패션 디자이너는 “마크롱 대통령 선글라스는 프레임의 너비가 그의 머리 너비와 정확히 맞는다”고 호평했다.
이 선글라스는 트럼프에 맞서 보다 강경한 태도를 원하는 유럽의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트럼프는 다보스 포럼 벽두 유럽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아첨 섞인 문자들을 공개했다. 그린란드를 장악하려 들지 말라고 설득하려는 시도였다.
마크롱도 트럼프를 파리로 초청해 식사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태도에 유럽과 미국의 트럼프 비판자들이 발끈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사람들이 납작 엎드리고 있다. 모든 세계 지도자들에게 무릎 보호대를 줬어야 했다.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런 와중에 마크롱이 무대에 올랐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논쟁이 폭발했다. 수많은 밈이 그를 “르 매버릭(Le Maverick; 독불장군 혹은 줏대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라고 불렀다.
일부 평론가들은 눈 부상을 다루는 마크롱의 방식이 2023년 조깅 중 다쳐 안대를 착용했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보다 훨씬 세련됐다고 평가했다.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독일인과 프랑스인의 차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60개 전쟁 중 일부만 해결" 꼬집어
마크롱은 연설에서 트럼프가 재임 중 8개의 전쟁을 끝냈다고 주장한 것을 비꼬았다. 그는 2024년에만 60개가 넘는 전쟁이 있었는데, 이는 “절대적인 기록”이라면서도 “몇몇은 해결됐다고 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마크롱은 연설에서 매버릭을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법치와 예측 가능성이 여전히 게임의 규칙으로 작동하는 곳이 있다”면서 “내 생각에 시장에서 상당히 저평가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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