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만에 폐지…인권단체 "안전 장치 빼앗는 것"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미 법무부가 유색인종 등 특정 집단에 불균형적인 피해를 주는 정책을 제한해 온 이른바 '극심한 불균형적 영향(disparate impact)' 민권 규정을 폐지하는 절차에 들어갔다고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이날 연방 자금을 받는 지방정부와 각종 단체가 인종적으로 중립적인 정책이라 하더라도 특정 인종 집단에 과도한 피해를 주는 경우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한 '극심한 불균형적 영향' 기준을 공식 폐지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은 50년 가까이 연방 민권 집행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1964년 제정된 민권법은 인종, 피부색, 출신국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법무부와 연방법원은 오랫동안 이를 고의적 차별뿐 아니라 실제 운영에서 특정 집단에 불균형적 피해를 초래하는 정책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서 4월 행정명령에 서명해 각 부처에 불리한 영향에 기반한 책임 부과를 가능한 한 없애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번 법무부 조치는 해당 행정명령을 구체화한 것으로, 팸 본디 법무장관은 성명에서 "법무부는 너무 오랫동안 연방 자금을 받는 기관들이 인종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해 온 규정을 없애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규정 변경을 추진하면서 통상적인 예고·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했다. 법무부 대변인은 일부 규정이 기관 운영·인사, 보조금·급부·계약과 관련된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를 건너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연방법 조항을 그 근거로 들었다.
흑인민권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 법률방어교육기금(NAACP LDF)은 이번 조치를 "전례 없고 위험한 단계"라고 규탄했다.
NAACPLDF의 아말레아 스머니오토풀로스 선임 정책 자문은 "트럼프 행정부는 사람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해 온 바로 그 법들을 잠식하면서 평등을 중시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며 "법무부의 불공정한 차별 정책 금지 규정을 없애는 것은 경찰, 법원, 공공 일자리, 정부 서비스 접근에서 나타나는 가장 은밀한 배제에 맞서는 핵심 안전장치를 빼앗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법무부 민권국을 이끄는 하밋 딜런 국장은 기존 규정이 과도한 소송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명에서 "이전 규정은 고의적 차별의 증거 없이도 인종적으로 중립적인 정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도록 장려했다"며 "이 이론을 거부함으로써 인종·성별별 할당제나 가정을 강제하는 대신 실제 차별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게 돼, 법 아래 진정한 평등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1973년부터 연방 자금을 받는 기관에 대해 새 산업시설 건설이 인근 흑인 다수 지역사회에 과도한 피해를 주는지 여부 등 불리한 영향을 고려하도록 요구해 왔다.
이 규정은 주택 공급자, 경찰 등 특정 기관이 차별의 '패턴 또는 관행'을 보여 왔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 근거가 되기도 했다. 차별적 관행을 시정하는 내용의 합의나 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법무부는 불리한 영향 기준을 완화하기 위한 예비 조치를 일부 취했지만, 공식 폐지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번 조치로 연방 차원에서 불리한 영향 이론에 기반한 인종차별 규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인권단체와 일부 주 정부가 소송에 나설 것이 유력해 향후 사법부 판단에 따라 제도 후퇴 폭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