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의심됩니다"…AI, 이젠 '마음의 병'도 찾아낸다[빠정예진]

기사등록 2025/10/18 06:01:00 최종수정 2025/10/18 06:46:24

우울증 진단, 기존 10분에서 10초로 단축

"우울증 진단 지연시 상태 악화 될 수도"

환자가 증상 축소·과장해도 AI가 분석해

우울증으로 자살충돌 느끼면 치료 필요

[서울=뉴시스]  AI 의료기기 아크릴(ACRYL-D01)은 최신 대형언어모델(LLM) 기술을 활용, 환자의 실제 면담 기록을 분석해 우울증 확률을 수치화해 진단을 돕는다. 사진은 분석 예시 모습.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40대 남성 김진호(가명)씨는 경기 침체로 영업 실적이 악화되자 불면, 식욕 저하, 감정 기복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에는 업무 스트레스나 일시적 우울감이라 생각하고, 운동으로 극복하려 했지만 증상은 회복되지 않았고 점점 심해져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최근의 생활 변화, 감정 상태 등을 의료진에 상세히 설명했다. 이후 AI(인공지능) 우울 진단 프로그램을 활용해 김씨가 면담 과정에서 감정, 생각 등을 표현한 내용을 평가했다. AI 프로그램은 최신 대형언어모델(LLM) 기술을 활용해 김씨의 응답을 분석했다. '자존감 저하', '자살 충동', '의욕 저하'와 관련된 문항 등을 토대로 '우울증 위험도'가 79%라는 판단을 내렸다.

'우울장애'와 단순한 우울감을 구분하는 기준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우울감 때문에 평소 무난하게 해오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조절하기 힘든 자살충동이 들면 치료가 필요한 단계다.

우울증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우울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이 폐만 끼친다고 느끼고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겨 과도한 자기 비난에 시달린다. 심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먹고 싶은 마음은 물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살이 빠지고 기력도 약해진다. 반대로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이 당겨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는 경우도 있다. 불면증이 생기거나 반대로 잠이 과도하게 많아지기도 한다. 이런 증상들이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매일, 최소 2주 이상 지속되고 직장·학교·대인관계에 상당한 지장을 줄 때 병적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이준희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젊은 분들은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오는 경우가 많고, 코로나 때부터 경기가 좋지 않아 취업이 안 되거나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의 효과적인 치료와 합병증 예방을 위해서는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이 필요하다. 오진이나 진단 지연은 부적절한 치료로 이어져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고 심각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우울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칫 양극성 장애 등 다른 질환으로 오인될 수 있어 올바른 약물 선택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병원을 찾은 환자와 면담을 진행하면 환자들이 증상을 축소하거나 과장해 정확한 진단이 한계가 있었다. 객관적 진단 도구와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진단 방법이 필요했고, 면담 텍스트, 음성 등 비정형 데이터 AI로 분석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돼 왔다.
 
'닥터앤서 2.0'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아크릴'(Acryl-D01)은 AI 기술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뉴시스] 이준희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AI 의료기기 아크릴(ACRYL-D01)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주도적으로 연구에 참여한 이 기술은 지난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2등급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았으며, 진료 현장에서 사용을 준비 중이다. 대한의학회와 질병관리청이 공동 발간한 '우울증 임상진료지침'의 우울증 모니터링 및 평가 기준에 따라 환자 면담 기록지를 데이터화 하고 환자 답변 중 놀람, 두려움, 분노, 사람, 슬픔, 싫음, 행복, 중립 등의 감정을 선별하고 AI 알고리즘을 거쳐 우울증을 확률로 제시하는 원리다.
 
우울증을 스크리닝하는 소프트웨어가 국내 허가를 받은 것은 처음으로, 보라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실증사업 결과 우울증 평가에 소요되는 평균 시간을 기존 10분에서 10초까지 단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도 음성인식, 언어사용 등으로 우울증을 진단하는 AI 기술이 있지만, 실제 환자의 면담기록을 토대로 우울증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상태를 반영해 우울증 확률을 수치화한 의료기기는 전무하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는 전문의의 최종 진단이 필수지만 AI기술이 더 발전하면 전문의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1차 스크리닝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울증 확률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해 의사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조기 진단으로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165명 증가했으나 이 중 67.3%(784명)가 서울과 경기지역에 집중됐다. 전국 24개 시군구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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