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참사 희생자·유가족 악성 게시글·영상 수사 확대
강력 수사 강조했는데도 악성 글·영상 피해 신고 잇따라
준실명제 도입 재주목…"건전한 여론 형성 해칠 수 있어"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와 관련한 온라인 악성 댓글(악플)이 끊이지 않자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경찰은 악플 게시자를 추적하기 위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인터넷 준실명제(아이디, IP 주소 공개)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5시 기준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악성 게시글·영상 126건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여객기 사고와 관련한 악성 게시글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게시자를 추적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5건을 집행했으며 피의자 1명을 검거했다.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진들도 악플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참사 후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30일 뉴스 댓글 공지사항을 통해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댓글로 상처받지 않도록 악플이나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되는 글들은 삼가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카카오도 포털 '다음' 뉴스 내 참사 관련 기사 댓글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우려사항 발생 또는 유가족 요청이 있을 경우 댓글 서비스 비활성화 등 추가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다음 지도에서 제공하는 무안국제공항 후기 글 작성을 일시적으로 막았다. 별점 테러, 지역 비하 등 후기 작성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후기 글이 여러 차례 올라오자 카카오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조치한 것이다.
◆악플 근절 강력 수사에도 사이버 명예훼손 증가세
네이버, 카카오 등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악플 차단에 노력하고 있지만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건수는 증가 추세다. 경찰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으로 접수된 사건은 2019년 1만6633건에서 2022년 2만9258건으로 증가했다. 2023년 2만4252건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2만건 이상이다.
이에 악플 문제 해결책으로 인터넷 준실명제가 재차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7년 도입됐지만 2012년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리며 폐지됐다. 악성 게시물 감소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도 위헌 이유 중 하나였다.
이후 준실명제 도입 논의가 국회에서 이어졌다. 실명제 지지자들은 익명성이 악플 증가 주원인이라며 최소한 댓글 작성자의 아이디 전체 또는 IP 주소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준실명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국회에 발의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 운영자는 이용자를 식별하기 위해 모든 이용자 아이디와 IP 주소 전체를 모두 공개해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위헌 결정으로 폐기된 실명제, 준실명제도 악플 근본적 해결책 아냐"
하지만 법안 발의 당시에도 인터넷 준실명제가 악플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입법 검토 의견으로 "악성댓글로 인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하나 아이디, IP 주소는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에 포함될 소지가 있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유권해석을 거치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익명성 보장이 온라인 플랫폼의 핵심 원칙이라는 점도 실명제 도입의 장애물로 꼽힌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검토 의견으로 "인터넷 게시판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논의를 전개하고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이용자 신원이 드러나도록 강제할 시 인터넷 게시판의 건전한 여론 형성 기능이 위축되고 저해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도 실명제 도입보다는 플랫폼의 자율규제 아래 교육과 강력한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명제 도입이 악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며 "이용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 등 캠페인을 확대하면서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실명제 대신 현실적인 대안으로 피해 구제 절차 간소화 등을 들었다. 최 교수는 "특정 웹사이트에 명예훼손성 글·영상이 게재되면 피해자가 게시자 정보 제공을 청구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거나 플랫폼이 해당 글·영상을 빠르게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본인 인증을 마친 회원만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인터넷 플랫폼이 누가 글·영상을 게재했는지 특정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네이버가 실제로 본인확인을 거친 계정에 한해 뉴스 댓글 작성과 공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 "(공인 외 일반인이)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면 배상액이 보통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소송비가 비싸고 절차가 복잡한데 비해 매우 적다"며 "정신적 손해배상액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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