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수리·행정처분 중단 '구제책' 제시
전문의 면허 취득 열고 근무시간 단축도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도 '보류'
법과 원칙 대응하겠다는 정부 입장 후퇴
"중증 환자 고통 커지는 상황서 불가피"
[세종=뉴시스] 박영주 구무서 기자 =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사직서를 각 병원이 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절차도 중단한다. 상급 수련 단계를 밟거나 전문의 자격 취득을 할 수 있게 관련 규정도 조정한다. 전공의들이 병원에 복귀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면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직 전공의들에 대해서도 행정처분을 '보류'하기로 했다. 전공의 복귀 여부, 여론 등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실상 의료법을 위반하고 병원을 나간 전공의들에 대한 '구제책'을 대거 제시하면서 스스로 강조해 온 '법과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공의 사직 허용…전원 복귀 포기하고 '새 판' 짜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나자 수련병원에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전공의들이 다른 의료기관에 재취업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난달 30일 서울 5개 상급종합병원 원장들은 사직서 수리를 허용해달라고 정부의 요청한 바 있다.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철회됨에 따라 각 대학병원의 병원장들은 이날부터 미복귀 전공의들의 의사를 확인해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레지던트 1만509명 중 8.4%(879명)만 출근하고 있다.
정부는 병원장들에게 사직 수리가 권한을 주면, 전공의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 측의 설득과 정부의 유화책이 더해질 경우 병원에 남아 수련을 이어가고자 하는 전공의들의 복귀 결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공의가 수련병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일반의로 소형병원에 취업하더라도 장기간 지속되는 의료 공백 사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도 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지난달 29일 "복귀를 희망하는 전공의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상당한 규모가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귀 전공의 '구제책' 대거 마련…행정처분 중단·전문의 시험 추가
정부는 전공의들이 병원에 돌아올 수 있게 구제책도 대거 마련했다. 복귀한 전공의들의 행정 처분 절차를 중단해 법적 부담 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레지던트 3~4년 차 전공의의 경우 전문의 면허를 따는 데 지장이 없도록 1월에 예정된 시험을 본 이후 병원 이탈 기간만큼 추가 수련을 하면 전문의 과정을 밟는 데 지장이 없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와 함께 전문의 시험을 추가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인턴이나 레지던트 등도 병원 이탈 기간이 3개월이 지나서 마칠 수 없는 수련 기간을 단축해 다음 전공의 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전공의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연속 근무시간을 현행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단축하는 시범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주당 근로 시간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점진적으로 축소해 과중한 근무시간을 줄일 예정이다.
전공의에 대한 근로 의존도를 낮추고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수련 환경도 개편하고 재정 지원도 강화한다.
◆미복귀 전공의 행정처분마저 '보류'…정부 '원칙' 깼다는 비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은 '보류'하기로 했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 의료 현장의 비상진료체계 현황, 여론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의대 증원 발표와 함께 진료유지명령 및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당초 2월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3월부터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자 정부는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위한 사전 통지서를 발송했지만, 총선을 앞둔 지난 3월26일 '유연한 처리' 방침으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절차는 일시 중단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동안 법과 원칙에 따라 행정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이번 조치로 정부가 그동안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장관은 이날 정부의 조치가 그간 수차례 강조해 온 '법과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과 관련해 "중증 환자의 고통은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은 불가피했다"며 "사직서 수리를 허용해 달라는 현장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정부는 비판을 각오하고 사직서 수리 금지 등 각종 명령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형준 보건의료단체 정책위원장은 "처음에 정부가 (전공의) 집단행동인 만큼 사직을 안 받아주겠다고 했고, 행정명령 사전통지를 하다가 3월부터는 중단했다"면서 "정부의 원칙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원칙을 깨고 강행한 정부의 유화책에도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행정처분을 결정할 때보다는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공을 넘기고 결정하라고 했으니 지켜봐야 한다"며 "전공의들이 판단해야 한다. 계속 버텨봐야 실익은 없고 본인만 불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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