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중인 당신, '녹음 중'입니다…민원공무원 보호대책 발표

기사등록 2024/05/02 12:30:00 최종수정 2024/05/02 12:51:21

민원인이 욕설 또는 협박하면 공무원이 통화종료

통화 1회당 권장시간 넘으면 전화 끊을 수 있어

민원공무원 통화, 시작부터 종료까지 자동 녹음

행정기관 홈페이지 게재된 공무원 이름 비공개

악성민원 피해 공무원은 6일 이내 공무상 병가

[세종=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행정안전부). 2024.05.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앞으로 행정기관에 걸려오는 모든 민원 전화가 자동 녹음된다. 악성 민원인의 폭언·욕설 등으로부터 민원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또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공무원들은 6일 이내 공무상 병가를 받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등 17개 부처는 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민원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각 행정기관 민원실에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등 민원 공무원 보호조치를 실행해오고 있지만 '악성민원'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3월에는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A씨가 도로 보수 공사 후 반복되는 민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기존 방안을 보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민원공무원을 보다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담아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부터 행안부 등 17개 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방자치단체 민원 공무원과 청년 공무원, 공무원노조 등과 여러 차례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민원인이 폭언하거나 통화 권장시간 넘으면 통화 종료

먼저 정부는 악성민원을 폭언·폭행 등 민원인의 위법행위와 공무방해 행위를 규정하고, 악성민원 유형도 세분화해 대응방안을 각급 기관에 안내하기로 했다.

그간 '악성 민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고 유형이 세분화돼있지 않아 어디까지가 악성 민원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앞으로는 민원인의 폭언, 명예훼손, 성희롱, 폭행, 기물파손, 협박 등은 '위법행위'로 분류하고 반복되는 민원과 부당한 요구 등은 '공무방해 행위'로 간주할 방침이다.

민원인이 욕설·협박·성희롱성 발언 등 폭언을 할 경우 공무원이 스스로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한다. 기관별로 통화 1회당 권장시간을 설정해 부당한 요구로 권장시간을 초과할 경우 이 역시 통화를 종료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민원 공무원은 전화로 민원인이 욕설을 하거나 민원과 상관없는 내용을 장시간 발언해도 그대로 듣고 있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통화를 종료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는 얘기다. 담당 공무원이 우선 1차 경고를 하고, 그럼에도 폭언이 계속되면 공무원이 통화를 종료시킬 수 있다.

온라인 민원창구를 통해 대량의 민원을 신청해 업무 처리에 의도적으로 큰 지장을 준 경우에는 민원 신청에 제한을 둘 계획이다. 민원실 방문도 사전예약제 등을 통해 1회 권장시간을 설정한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열린 공노총, 악성 민원 희생자 추모 공무원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4.29. bjko@newsis.com



행안부 관계자는 "대량 민원에 대한 기준은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열어서 심의해 일괄적으로 정하도록 제도를 정비한다"고 설명했다. 

민원 종결이 가능한 경우도 확대하기로 했다. 통화와 마찬가지로 문서로 신청된 민원에 욕설, 협박, 성희롱 등이 포함돼있으면 공무원이 자체 종결시킬 수 있다.

현재도 같은 내용의 민원이 반복적으로 제기됐을 때 공무원이 자체 종결시킬 수 있는데, 이때 민원 취지와 업무방해도 등도 함께 고려해 내용 동일성의 인정 범위를 확대한다.

부당하거나 과다하게 제기되는 정보공개 청구는 심의회를 거쳐 종결처리할 수 있도록 법령에 근거를 마련한다.

◆통화 시작부터 종료까지 자동 녹음…홈피에 공무원 이름 비공개

민원 통화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내용 전체가 자동 녹음되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종전에는 공무원이 통화 도중 민원인에게 '녹음을 시작하겠다'고 구두로 사전에 알려야 녹음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통화 내용이 자동으로 녹음된다.

행정기관 홈페이지 등에서 공개하고 있는 공무원의 개인정보는 비공개하도록 기관에 권고할 방침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공무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각 기관에 공무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권고한다"며 "나머지는 각 기관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기관마다 악성 민원 전담 대응팀을 운영하고 기관 차원에서 대응이 곤란한 민원 대응을 지원하는 범정부 전담 대응팀도 운영한다.

피해공무원이 범정부 전담 대응팀에 즉각적으로 상담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핫라인도 신설한다. 범정부 전담 대응팀이 하반기부터 운영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하고 관계기관 협의를 추진한다.

민원인의 폭언, 욕설, 협박 등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고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피해공무원이 희망하는 경우에는 고소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지자체 등 일선 기관에서 법적 대응을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상세 지침도 마련해 제공한다.

법적으로 의무화돼있는 민원 공무원에 대한 보호조치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도록 관리한다. 각 기관은 매년 보호조치에 대한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행정안전부가 민원서비스 종합평가 등을 통해 이를 평가한다.

◆악성민원 피해 공무원, 6일 내 공무상 병가…치유·휴식 지원

또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공무원들은 앞으로 6일 이내 공무상 병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정부는 6일 이내의 공무상 병가 사유에 ‘악성민원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를 추가하고 피해 공무원을 일시적으로 업무에서 제외하고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지침에도 명시할 계획이다.

피해 공무원에게 심리상담, 정서안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공무원 마음건강센터도 확충하고 민원 공무원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과천=뉴시스] 지난달 1일 민원실 통합창구 운영 현장. (사진=과천시 제공). photo@newsis.com.




그 밖에 정부는 관련 법령·규정·판례·통계 정보를 정리해서 제공하는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민원 공무원이 보다 수월하게 업무를 처리하도록 돕고, 민원창구에는 경력자를 우선 배치하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민원 부서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기별 수요를 고려해 민원 분야에 인력도 재배치한다.

민원 공무원에게 인사상 혜택도 부여한다. 민원공무원이 승진 관련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민원 업무를 직무특성 관련 가점항목으로 명시한다. 난이도, 처리량 등 담당한 민원 업무 특성에 따라 민원 수당 가산금도 추가로 지급한다.

정부는 민원처리법과 정보공개법 등 개정이 필요한 법률은 조속히 개정안을 발의하고 월별·분기별로 추진 현황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정부는 악성 민원으로 인한 업무방해 없이 질 좋은 민원서비스를 제공 받고 상호 존중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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