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검증' 출제점검위 포함 730여명
모처에서 '감금' 합숙 출제…"엄중한 분위기"
교육계 "킬러문항 유무보다 변별력이 쟁점"
출제오류도 변수…"오류 자체보다 대처 중요"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주문에 따른 첫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나흘 뒤 시험대에 오른다. 출제 과정에서 킬러문항 배제를 위한 추가 검토단계가 생긴 가운데 교육 당국도 긴장감 속에서 수능 출제본부를 지켜보는 분위기다.
12일 교육부와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등에 따르면, 2024학년도 수능 출제·검토위원 730여명은 보안상 공개가 어려운 모처의 합숙소에서 총 38일 간의 '감금' 속에 막판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출제본부는 출제위원단과 검토위원단으로 구성돼 왔으나 올해는 과거 출제 경험이 없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들인 '수능출제점검위원회'가 생겨 규모가 늘었다.
수능 출제는 출제위원단이 문제를 내면 검토위원단이 난이도와 오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필요 시 수정 의견을 낸다. 이를 받은 출제위원단이 다시 2차 문항을 제출하면 2차 검토가 이어진다.
다수의 교육과정 내용(성취기준)을 묻거나 다양한 풀이 방식이 존재할 수 있는 문제는 5~6명 규모 '고난도 문항 검토단'의 3차 검토를 받는다.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사태로 지난해부터 신설된 절차다.
검토 절차가 끝난 문제를 수능출제점검위원회가 살펴보면서 '킬러문항' 요소를 점검한다. 위원들은 25명 규모로, '평가 베테랑'인 출제·검토진과 달리 수능 출제 경험이 일절 없는 교사(경력 10년 이상)들로 구성됐다. 평가원이 아닌 교육부 위촉을 받는다는 점도 차이다.
복수의 교육 당국 관계자와 전직 평가원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일단 수능 출제를 위해 합숙소에 들어가면 아무리 교육부나 평가원 본부 관계자라도 출제나 검토 과정에 일체 개입할 수 없다. 심지어 출제위원단, 검토위원단, 점검위원단 간에도 왕래할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교육부는 수능 출제 경험이 없는 교사들로 별도의 점검 조직을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간 출제본부에는 출제나 검토 경력이 풍부하거나 평가원에서 잔뼈가 굵은 평가 전문가들이 투입돼 '킬러문항'을 내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올해 입소식에서는 3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며 "'킬러문항'이 없으면서도 적정한 변별력을 유지하고 오류가 없도록 당부했다"고 전했다.
수능이 끝나기 전에 출제진과 접촉할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주문이라는 대외적인 환경과 사회적 관심 속에서 긴장감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수험생들 입장에서 이번 수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잣대는 9월 모의평가다. 6월 모의평가에는 윤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정부 차원의 발표가 있었다. 이를 이유로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대기 발령됐으며 평가원장은 자진 사퇴했다.
9월 모의평가는 상대평가 방식의 주요 영역인 국어와 수학은 적어도 중상위권 수험생들에게는 변별력을 갖추면서 킬러문항은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교육 당국은 이번 수능에서도 이러한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눈치다. 또한 문항과 정답에 오류가 없길 기대한다.
킬러문항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려면 무엇이 킬러문항인지에 대한 정의가 합의돼야 하겠지만 해석 차이가 분분하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그간 킬러문항은 수험생들 사이에서 극단적인 초고난도 문제를 지칭하는 표현이었고 전문가들도 다수 난이도를 기준으로 킬러문항을 판단한다.
평가원장을 지냈던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소위 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한다는 기조인데 그게 무엇인지 엄밀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며 "예전에는 한 문항 안에 성취기준이 4~5개 들어간 식이라면 이번에 2~3개, 3~4개 정도로 줄이는 게 고난도 문항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교육부는 킬러문항은 정답률, 난도와 무관하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으면서 문제풀이 기술(스킬)에 숙달된 학생에게 유리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킬러문항 없이'보다는 '변별력을 갖춘' 시험을 출제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물수능'(너무 쉬움) 또는 '불수능'(너무 어려움)이면 문제라는 것인데, 수능이 적정한 변별력을 갖추는 문제는 대단히 어려운 일로 꼽힌다.
9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따져봤을 때 여전히 불안 요소가 많은 상황이라는 말도 나온다. 수학이 대표적이다. 만점자(최고 표준점수 득점자)가 2520명이다. 무척 까다로웠다던 지난해 수능(937명)의 2.7배에 이른다.
또한 원서 접수자 기준 31.7%가 N수생으로 27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점, 9월 모의평가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한 번 수험생들에게 제시됐던 점 등 수험생 체감 난이도를 고려하는 데 있어 변수는 셀 수 없다.
다만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학 만점자가 2500명 나왔다고 변별력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으며, 국어와 수학, 탐구 모두를 놓고 변별력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매우 어렵다고 느끼게 내기에는 쉽지 않겠지만 평가원의 능력을 믿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에 하나 출제 오류까지 빚어질 경우 평가원장은 물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거취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수능이 30년을 거쳐 오면서 5지선다형 속에서 매력적인 오답을 만드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와 있다"며 "객관식은 오류가 일어날 가능성을 늘 갖고 있다. 그런 사태가 터졌을 때 지적을 수용하는 등 수습을 잘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평가원 측은 "출제본부 내 참여자들은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출제 업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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