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화하던 아들"…디엘이앤씨 8번째 사망자 母의 오열(종합)

기사등록 2023/09/19 19:39:20 최종수정 2023/09/20 10:13:38

지난달 11일 부산 건설 현장서 하청 노동자 추락사

중대재해법 이후 7건 사고 총 8명 사망…최다 발생

민주노총,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 2박3일 순회투쟁

'노동자 끼임 사고' SPC그룹 회장 중대재해법 고발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돈의문 사옥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 및 생명 안전 개악 저지 순회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 희생자 유족이 발언하고 있다. 2023.09.19. hwang@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내 아들 살려내라. 내 아들 살려내라. 그 어려운 가정에서 너무나 가난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와도 꿈을 가지고 대학을 나와서 대학원을 다니며 석사학위 받고 하루도 빠짐 없이 전화했던 우리 아들입니다. 이제 어디 가서 그 아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디 가서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e편한 세상' 건설사 '디엘이앤씨'(옛 대림산업) 본사 앞에서 고(故) 강보경(29)씨의 어머니 이숙련씨는 아픈 몸으로 아들의 영정 사진을 부여잡으며 하염 없이 오열했다.

강씨는 지난 8월11일 부산 연제구에 있는 한 아파트 재개발 건설 현장에서 아파트 6층에 있는 창호를 교체하는 작업 중 창호와 함께 20m 아래 1층 바닥으로 떨어져 숨진 디엘이앤씨의 하청 노동자다.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디엘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7건)의 8번째 사망자이기도 하다. 디엘이앤씨는 '중대재해 최다 발생' 기업이다.

강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특히 하루도 빠짐 없이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건강과 안부를 챙기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살뜰한 아들이었다고 유족은 전했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의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이씨는 이날 디엘이앤씨를 규탄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매일매일 기다리다 엄마는 울음바다가 된다. 이 가슴 아픈 사연을 어떻게 하느냐. 내 아들 살려내라. 내 아들 너무 보고 싶다"고 통곡했다.

그러면서 디엘이앤씨를 향해 "내 앞에 와서 모든 사람들 무릎 꿇고 비세요.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너무나 억울합니다. 아무 걱정 말라던 우리 아들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목놓아 울었다.

위 수술을 하고 녹내장 등 지병을 앓고 있는 이씨는 아들의 죽음에 따른 충격으로 건강이 더욱 악화된 상태라고 한다.

강씨의 누나 지선씨도 "항상 어머니만 챙기느라 연애도 못해 본 아이다. 그런 아이를 디엘이앤씨가 한 순간에 빼앗아 가 버린 게 너무나 슬프다"며 연신 눈물을 흘리다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돈의문 사옥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 및 생명 안전 개악 저지 순회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DL이앤씨 중대재해 희생자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9.19. hwang@newsis.com

중대재해법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강씨의 사망 사고와 관련해 디엘이앤씨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잇단 사망 사고에도 디엘이앤씨에 대한 강제수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부는 현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된 자료 등을 바탕으로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등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노동자 사망 사고 등 발생 시 사업주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도 원청에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고용부는 "신속히 수사하고 철저히 책임을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앞서 발생한 사고로 고용부가 마창민 디엘이앤씨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지만, 첨예한 쟁점 사항과 검찰의 보완 지시 등으로 1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앞선 중대재해에서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 받게 했다면 매일 같이 어머니의 안부를 묻던 아들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며 고용 당국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도 함께 해 이씨를 안아주며 위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고인은 (사고 당시) 우리 아들과 나이가 똑같은 94년생이다. 같은 자식을 둔 엄마로서 너무나 비통하다"며 "몸도 성치 않은 와중에 도와달라며 만나자마자 무릎 꿇고 두 손 잡고 애원하는 모습이 얼마나 절실한 몸부림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단박에 가슴이 메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가장 힘든 유가족은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사회적 참사를 겪고도 언제나 진상 규명을 위해 발길 닿는 곳마다 납작 엎드려 빌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는 그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남=뉴시스] 조수정 기자 =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등이 16일 경기 성남시 샤니 생산공장 앞에서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 은폐 의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8.16. chocrystal@newsis.com
민주노총은 디엘이앤씨를 시작으로 2박3일 동안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을 돌며 책임자 엄정 처벌을 요구하고, 정부의 중대재해법 손질을 규탄하는 순회 투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에는 고용부 경기지청 앞에서 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가 잇따른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해 10월 SPC 계열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는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배합기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숨졌으며, 지난달에는 샤니 성남 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리프트 기계에 배 부위가 끼이면서 사망했다.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는 "경영 책임자는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총괄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며 "따라서 샤니에 대한 최종적인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허 회장을 경영 책임자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SPL 노동자의 유족은 지난해 허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허 회장을 경영 책임자로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강동석 SPL 대표는 불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이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민주노총은 허 회장 고발 기자회견에 이어서는 지난 6월 폭염 속 주차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다 20대 노동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코스트코 하남점을 찾아 규탄 대회를 열기도 했다.

오는 20~21일에는 화재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과 세아베스틸, 에쓰오일 등에 대한 고용 당국과 검찰의 수사를 규탄하는 선전전을 차례로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법 개선방향 토론회'를 열고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준 완화와 내년부터 법 적용을 받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2년 추가 유예 등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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