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교권에 씁쓸한 스승의 날"…박탈감에 뭉치는 교사들

기사등록 2023/05/15 05:00:00 최종수정 2023/05/15 07:53:54

교원노조 10~12만 명, 교원단체 10만 명 육박

기업과 임금격차, 신규 교사 감원…불만 늘어

학부모·학생 경계, 공무직과 반목…갈등 증폭

[세종=뉴시스] 지난해 9월20일 세종 인사혁신처 앞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 청년위원회 회원들이 '전대미문 실질임금삭감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교총 제공). 2023.05.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교원도 파업하고 천막농성 하라는 것인가. 수업 중에 교단에 드러누운 학생,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며 아동학대로 신고 당한 교사,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보고도 수당을 올려 줄 수 없다는 당국을 개탄한다."

지난달 25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앞서 파업을 벌였던 공무직 노조가 전국 시도교육청과의 임금교섭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내놓은 성명의 일부다.

교사들이 교권침해, 아동학대 고소를 이유로 학생과 학부모를 경계하고 공무직과 반목하고 있다. 노조 가입자 수도 늘어나는데, 박탈감을 느낀 교사들이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승의 날인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은 지난 10일 조합원 수가 7만3000명에 달했다고 선언하며 이를 기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교사노조는 201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 유래한 교원노조다. 이들은 전교조 등과 합해 올해 교원노조 가입자가 12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공식 집계인 고용노동부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보면, 2021년 교사노조 가입자 수는 4만5098명으로 전년도(3만6749명)보다 8349명 늘었다.

다른 노조를 합한 전체 교원부문 노조 조합원 수는 2021년 10만5000명으로 10만 명을 넘었다.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에게 노조 지위를 박탈당하기 직전인 2015년(6만여 명)과 비교해 75%나 불어난 규모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의 규모는 지난해 회장 선거인단을 기준으로 10만4714명으로 알려졌다.

한때 위축된다는 평가를 받았던 교사들의 조직화가 최근 다시 활발해지는 원인은 이들을 대표하는 노조와 교원단체의 주된 주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교사노조는 지난 10일 토론회에서 "1980~90년대 교사운동과 2020년대는 교사의 교육할 권리와 교권의 확대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면서도 "과거에는 교육 관료의 간섭 배제,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 중심적 요구였다면 2020년대는 학부모·학생·공무직 등으로부터 침해되는 교사 교육권의 보장"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원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에 보내는 교육분야 성적표 발표 기자회견'에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5.10. ks@newsis.com
교사 단체들은 최근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잦다며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정당한 생활지도는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요구다.

돌봄 업무를 두고 교사들은 과거부터 공무직인 돌봄전담사 노조와 반목하고 있다. 교총은 학교 안에 설치된 돌봄교실, 늘봄학교 운영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사노조는 수업 외 돌봄이나 행정 업무는 교사의 본질적인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당이 동결됐고 물가가 크게 올랐다며 재정 당국을 압박해 임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거나, 신규 초등교사 채용 규모 감축에 반대하며 정규 교사 수를 더 늘려 달라는 것도 노동자로서의 권익 찾기에 가깝다.

물론 이런 교사들의 움직임이 잘못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교육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교사들이 해고되지 않고 보다 적은 수업 시간과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 받는다며 속된 말로 '철밥통'이라 멸시하는 시선도 있는데 이는 오해라는 것이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KEDI) 전 원장은 "교사들의 근무 여건을 보면 단순한 수업 준비뿐만 아니라 생활 지도와 같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다"며 "예컨대 아이 좀 돌봐 줄 수 있지 않냐 하는데 교수학습과 겹치므로 과한 노동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 수가 줄어 정부가 교사 채용 규모와 정원을 줄이고, 임금 인상폭도 그리 크지 않아 다른 대기업 직원들과 격차가 벌어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반 전 원장은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나 2008~2009년(세계금융위기)에도 공무원과 교사는 선호 직종에서 1~3위권을 차지해 왔다"며 "대기업과 임금 격차가 커지고 연금도 받지 못하니 젊은 세대가 공무원처럼 교직을 꺼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교사가 성직자가 아닌 이상 이제는 전문가나 노동자로 보는 게 불가피하다"며 "교원노조의 확대를 바람직하다 평가하는 것을 떠나 막을 수 없는 하나의 추세이며 흐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서울=뉴시스] 한국노총, 공무원노조, 교사노조, 경찰민주직장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6월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건너편에서 한국노총 공무원, 교사노조 공무원보수위원회 참여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3.05.15. photo@newsis.com
'성직관'과 '전문직관', '노동자관'은 교사의 역할을 규정하는 3가지 관점이다. '교사라면 학생을 위해 온 몸을 던져야 한다'는 성직관은 이미 교사들도 시대착오적인 관점이라 보는 조사도 있다.

교사노조가 지난 4월 교사상에 대한 교사의 인식을 물은 설문조사에서 '학생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성직자'는 0.8%에 그쳤다. '교육전문가'가 86%로 1위였고, '급여를 위한 직장인'이 12.1%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교육공동체와의 반목이 갈수록 커지고, 교육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교사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되겠지만,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쌍방의 대 타협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권익을 굽히지 않는 일은 문제다.

송 교수는 "교사들이 학생을 보지 않고 이해관계만 따라가면 사회적으로 받았던 존경이나 지위 역시 다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전문가로서의 교직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스로 전문성을 기르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교사들의 박탈감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반 전 원장은 "정부가 계속 교사를 줄이려고만 하는데 이는 교사들에게 큰 부담"이라며 "지방은 학생 수가 적어도 수도권은 여전히 한 반에 30~35명 시대라 정부가 평균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사의 양성과 수급 문제는 어느 정부든 자기 임기 내에 푼다고 생각하면 항상 저항이 생기는 만큼 교육계의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한 긴 호흡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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