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진 행불, 할머닌 총 맞아"…제주4·3 추념식 유족들 위로

기사등록 2023/04/03 10:01:33 최종수정 2023/04/03 10:32:56

3일 오전 제75주년 제주4·3 추념식 거행

"귀 안들려 멈추라는 소리 못 듣고 그만"

"3살 여동생 입지도, 먹지도 못하고 숨져"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를 찾은 유족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2023.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할아버지는 행방불명됐고,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총 맞아 돌아가셨어요"

제75주년 제주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8시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위령탑에서 만난 양인섭(50·연동)씨 부부는 이 같이 말했다.

양씨는 이날 조부모의 이름이 적힌 비석 앞에서 전날 준비한 제수 음식과 술을 한 잔 올려놓고 억울하게 70여 년 전 제주4·3 광풍에 휩쓸려 억울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냈다.

양씨는" 해마다 찾아와 할어바지와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 할아버지는 행방불명인 묘에 있고, 할머니는 이 곳에 있는데, 이름을 몰라 '양성익의 처'로 돼있다"고 말했다.

양씨에 따르면 할아버지 양성익은 70여 년 전 군경에 끌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양성익은 현재는 '행방불명인'으로 남아있다.

양씨의 할머니는 이름조차 없어 '양성익의 처'로 기록돼 있다. 그의 할머니는 70여년 전 귀가 들리지 않았는데, 멈추라는 군경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걸어가다 군경이 쏜 총을 맞아 길거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주시 화북리에서 온 강세덕(84)씨는 아내와 함께 평화공원을 찾아 친형의 묘비 앞에서 제를 지내고 있었다. 그의 친형 강세철은 4·3 당시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맞아 고향인 제주를 찾았다가 군경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숨을 거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세에 불과했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5주년 제주4·3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지를 찾은 한 유족이 표지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다. 2023.04.02. woo1223@newsis.com
4·3평화공원에는 행방불명인 묘가 조성돼 있다. 제주에 참혹한 피바람이 불었을 당시 산과 들에서, 육지 형무소에서, 또 깊은 바다에서 희생됐지만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 4000여 명의 개인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서 만난 김은삼(82)씨는 부친의 표석 앞에서 정성스레 싸온 제수 음식들을 올리고 있었다. 김씨의 부친은 김씨가 6살이던 당시 군경에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김씨는 당시 3살이던 여동생을 엎고 다니며 산이며 들이며 돌아다녔는데,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여동생은 며칠 뒤 숨을 거뒀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세월이 가니까 잊혀졌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정부정책적으로 진상규명에 힘써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념식은 '제주4·3, 견뎌냈으니 딛고 섰노라'는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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